#서울에서 1년 살던 이야기-(3) 서울이 좋은 도시라면
서울이 좋은 도시라면 문화가 흥해서다. 문화란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도처에 넘쳐나서다. 일례로 서울시청 광장이 여름철에는 각종 공연장으로 겨울철에는 썰매장으로 바뀌는 등 시시때때로 그 용도가 달리 활용되는 건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례일 것일 것이다.
서울은 공히 문화의 도시다. 문화의 전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면 문화는 형성되지 않을 뿐더러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사람이 많은 곳에 먹거리 시장이 형성되는 건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법칙이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는 옵션이다.
인사동은 세계적인 명소로 손색이 없다. 보기에 따라 우리 눈에는 인사동에 뭘 볼 게 있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인사동은 대한민국 문화의 보고다. 그렇지 않다면 평일에도 그렇게 많은 외국인이 인사동에서 연방 카메라 셔트를 누를 일이 없다.
중요한 점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흥하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타자를 통해 문화의식을 함양한다. 그건 시나브로 그렇게 된다.
우리라는 우리는 그 개념이 참으로 묘하고도 애매하다. 예컨대 동네 대항 줄다리기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이쪽 동네주민이 우리가 되고, 저쪽 동네주민도 우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도(道) 대항전을 벌이면 경상북도 도민인 우리가 되고, 강원도민이 또 하나의 우리가 된다. 이게 국가 대항전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가 되고, 미국 국민이 우리가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그렇게 똘똘 뭉치는 국민성에 감탄했고, 놀랐다는 식의 분석을 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에서 듣는 그야말로 놀라고 자빠질 무식한 소리를 심심찮게 들어왔다. 이는 인간의 본질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렇게 숱한 유대인을 학살하고서도 오늘날 독일 국민에게 대접받는 것은 히틀러가 국민성(전체주의)의 힘에 기대 전제정치를 폈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 대한민국은 여타 도시에 비해 타자를 통해 배울 게 많은 이점이 대단히 많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서울은 와 봐도, 내 고향 김천은 올 일이 없다. 알려지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올 일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그런데 경제영역에서 풍선효과가 발생하듯 문화지대에서도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이때 풍선효과는 선하다. 서울을 와 본 사람이 부산을 가고, 대구를 가고, 대전을 가는 식의 풍선효과다.
그들이 일단 대한민국 땅을 밟은 순간 그들은 이미 이 풍선효과의 일등 공신(?)의 기본자격을 갖추게 된다. 도시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좋은 도시라도 한 이틀 돌면 한계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다. 만족도의 피크는 하루 돌아보면 거기서 거기 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여행지에서 감탄을 자아낼 때는 여행지에 발을 딛고 선 지 두 시간 내외다. 가장 강렬한 인상은 그 때 받는다. 그 때문에 남는 시간에 타 도시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대한민국은 과연 그 많은 외국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인가. 이 의문은 우리는 정작 우리문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와 직결된다. 이름 좀 알려진 곳에는 어김없이 문화관광해설사가 배치돼 있지만, 수도 서울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소통의 벽에 외국인들은 가로 막히기 십상이다.
보고, 느끼고, 기껏 엉터리 영어번역 안내문을 보는 것으로 자족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미국을 이상향으로 쫓아왔다. 미국이 최대강국이어서 그랬을 것이고, 워낙 못사는 나라가 돼나서 미국에 의지해야 하면서 미국에 종속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박근혜 후보가 박근혜 당선인이 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 그에 대한 예우가 파격적으로 달라지듯이, 경제규모 15위권인 대한민국의 국민들 머릿속에는 적어도 자기 지역에 관한한 알아야 할 문화적 정보는 콩글리쉬든, 보디랭귀지든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말고 외부손님에게 공손히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나는 서울에서 목동에 살았는데, 목동을 지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나보다 많이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는 식이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내게 되레 묻는다. 그만큼 우리는 손님 맞을 준비가 부족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문화축제라는 것도 그저 먹고놀자 판이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문화를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어떤 대목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가. 그런 숙고가 국민 개개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야 우리가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 미국, 중국, 일본. 공통점은 강대국이었거나, 강대국인 나라들이다. 다른 점은 패권을 빼앗긴 나라와 패권을 빼앗은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도무지 답답한 것이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한글이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떠드는데, 정작 우리 국민은 우리 한글을 천대시 한다. 영어를 잘 못하면 부끄러운 것이고, 우리말과 글을 좀 모르면 그건 그래도 된다는 식이다. 우리 전통은 뭔지도 모르면서, 피카소가 어떻네 모네 어떻네를 입에 담으면 그게 교양인 줄 안다. 천만에 말씀이다. 대한민국 문화인들 중에는 교양인을 빙지한 사기꾼들이 천지다.
문화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사대주의에 편승해 오늘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분들이 누구인지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물근성을 알 수 있다.
문화는 상대적이나, 그것을 악용하면 안 된다. 귀하는 얼마나 문화시민인가? 귀하의 뿌리를 얼마나 알고 있고, 귀하가 나고 자란 고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귀하가 다닌 학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귀하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역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대한민국을 외국인에게 얼마나 어떻게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채비를 갖추었는가?
나는 수도 서울에서 우리 국민에게 그걸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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