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잡기(심보통 1979~)
길을 걷다 가을을 잡았다.
내 눈이 가 닿은 곳은 아파트 뒤편 쫄로리 선 잣나무숲
야트막한 언덕 위로 잣과 잣들은 어느 세월에
두두둑 두두둑 떨어져 사슴뿔 같게 흩어져 있다.
행인한테 밟혀 으깨지지 않은 놈 셋을 골라주었다.
한 계절 열심히 살다간 잣과 잣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귀밑엔 굴 등떼기마냥 석회질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그걸 잘못 누르면 본드 같은 점액질이 마지막 자존심인 양,
찔끔 찔끔 나와 손바닥과 손가락을 성가시게 한다.
잣나무숲에 서서 저 하늘 올려다 보니
싱그럽던 녹색 머리카락은 어딜가고, 염색한 할매마냥
을씨년스런 고동색 머리카락만 생기없게 양껏 뒤엉켜 있다.
나는, 나는
영미한테 혼날 생각 딱 하고 잣 세 개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내 손바닥에선 잣기름 내 은은하게 퍼져 있다.
영미한테 잣 내로 울컥하는 마음, 삭이게 해야겠다.
아직은 가는 가을을, 가겠다는 가을을 놓아주지 말아야 할 때.
/심보통 20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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