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 터널(심보통 1979~)
지금은 직지사로 가는 상행선이 된 길,
그 옛날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오고 추워지면
그곳으로 문둥병 환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곳은 일제가 우리 땅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쓰기 위해
놓은 철로 아래 놓인 텅빈 터널이었다.
원래 이곳은 아래쪽은 막혀 있었지만
윗쪽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문둥병 환자들은 아래쪽 개구멍으로 드나들었다.
1988년 올림픽 이후 우리 땅
개발 바람은 이곳 문둥촌까지 휩쓸고 갔다.
아래쪽으로 난 길이 뚫리고 훤한 도로가 됐다.
그 결인지 알 수 없으나
문둥병 환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매년 겨울이면 이제 고드름이 모여 산다.
살을 부비고 산 흔적이 있던 흔적 곳곳엔
신통하게도 도로 사는 내음이 피어나기 마련이라나.
고드름 내음을 맡으러 터널로 뚜벅 걸음하면,
어둠의 반사이익으로 빛나는 반대편 광명은
따뜻한 온기를 전할 것 같이지만 억수로 차가웁게 기습한다.
고드름이 씩씩하게 박쥐처럼 매달려 있는 이유일 테지만,
그 옛날 문둥병 환자들이나 근래의 고드름이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징글맞은 지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또 한번 마음 잡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심보통 2015.2.10 직지사 상행선 터널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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