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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새끼 용이 쉬어가고자 했다(심보통 1979~)

@사진= 한국일보


#새끼 이 쉬어가고자 했다(심보통 1979~)
그 옛날 새끼 용이 쉬어가고자 했다.
몸을 낮추어 땅에 안착했다.
몸을 숨겨야 했기에,
누군가 파놓은 구덩이로 몸을 누였다.
숨을 고르는데, 돌연 흙더미가 쏟아졌다. 
후미 쪽에 흙이 쌓였다.
고개를 쳐들고 안간힘을 쓰다 기절했다.
깨어 보니 사방이 황토빛이었다.
스르르 무거운 몸을 끌고 이리저러 둘러보았다.
그곳은 무덤이었다!
금동 신발, 금동 귀걸이, 금제 장신구, 토기들이
함께 그러나 가지런히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슬픈 얼굴을 짓고 있었다.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새끼 용은 힘껏 솟구쳐 오를 생각을 접었다.
그들을 돌봐주기로 했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 내는 동안, 그들의 얼굴에선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산 세월이 1,500년이다.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 쳐도 그것들은 여태 생생하다.
인간들은 우리의 발견을 반겼다.
우리도 늦게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나, 새끼 용은 이제 내 도리를 다한 것인즉, 
오늘 집으로 돌아간다. 
아, 좋은 가을 날...!
/심보통 2014.10.24  
 
*한국일보는 24일(1면 참고) '전남 나주시 정촌 고분에서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금동신발이 나왔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