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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김천의 곡성(哭聲)


#김천의 곡성(哭聲)
내 고향 김천에서 최근 잇따라 곡성(哭聲)이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5월 25일 38세의 젊은 경찰관이 숨을 거뒀다. 19일 밤 11시 30분 경, 역전파출소 앞에서 음주단속 중이던 경찰관은 가해자에게 차에서 내려 달라고 했지만, 가해자는 경찰관을 차량에 매달고 10m 가량을 도주, 목이 꺾인 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건발생 엿새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숨진 경찰관에게는 열 살 된 자녀와 세상에 고고의 소리를 준비 중인 아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다 앞선 4월 13일 새벽 4시 45분 경에는 78세 할머니가 남산병원 인근에서 도로를 건너던 중 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할머니는 20대 총선 투표참관을 위해 길을 나섰다가 과속차량이 덮치는 바람에 속절없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당원이었던 할머니는 당초 투표참관인으로 배정됐던 지인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자, 그 자리를 대신 채우려다 변을 당한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할머니가 돌보면 안 되는 손녀와 손자가 한 명씩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죽음은 황망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비극적 사건이다.
그러나 두 죽음에 대한 처우는 극과 극이다. 생명에 대한 사후처리가 '멍텅구리 법'에 때문에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있다.
김천경찰서는 38세 젊은 경찰관에 대해 1계급 특별승진(경위에서 경감으로)을 추서했다. 또 '경찰공로장'을 수여하기로 했으며, 행정자치부에 훈장수여를 건의키로 했다. 경찰공로장은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거나 헌신적인 봉사로 경찰업무 발전에 공적을 세운 경찰관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지인을 대신해 투표참관인으로 참석하려다 목숨을 잃은 78세 할머니는 평소 유지에 따라 유족들에 의해 황금동성당 납골당에 안치됐다. 할머니는 평생 평화성당을 다녔지만, 유족들은 납골당으로 모시기 위해 본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할머니의 유족들에게 가해자는 사고 이튿날 집을 찾아와 1,200만원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청해 왔고, 유족대표였던 할머니의 둘째아들은 "사고 당시상황만 정확하게 얘기해주면 당신 나이도 있으니 문제를 삼지 않겠다.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당신이 여기서 거짓말을 하면 합의는 없다"고 했다. 가해자는 이에 "할머니가 길바닥에 누워있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미 CCTV를 확인했던 둘째아들은 분노했다. 할머니의 유족들은 지금까지 합의를 봐주지도, 가해자를 만나주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가해자가 3,000만원의 공탁금을 걸면 기껏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게 된다. 둘째아들은 "대한민국 법은 차로 사람을 치여 죽여도 3,000만원이면 형사상 구속을 면하고, 민사상 유족과 가해자 간 합의금 문제가 남는 데 이건 고인을 상대로 결국 돈 장사를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데다, 변호사 비용 등 들여야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시작조차 쉽지 않다"고 억울해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천경찰서 관계자는 둘째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해자를 두고) 적당히 합의를 해주시죠. 젊은 사람 미래도 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죠."
이에 대해 둘째아들은 공무 중에 숨진 38세 경찰관의 죽음을 들어 "그런 논리라면 경찰관을 치여 죽인 가해자는 내 어머니를 치여 죽인 가해자보다도 다섯 살이 적다. 그에게도 미래가 있으니 선처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경찰관을 쳐 죽인 가해자는 바로 구속됐다.

경찰관의 유족 입장에서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78세 할머니의 죽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처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투표참관인으로 참석하려다 길을 나선 할머니 역시 심정적으로는 경찰관처럼 공무수행 중 벌어진 사건으로 처우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유권해석의 문제고 특이 케이스여서 쉬이 결론이 날 것 같지도 않다.
내 고향 김천에는 곡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두 죽음의 삼가 명복을 빈다.
/심보통2016.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