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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인격살인


‪#‎인격살인‬
살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행위가 있고, 말로써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가 있다. 전자를 일반적인 살인이라고 하고, 후자를 인격살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후자에는 그 심각함을 잘 모르거나 '진짜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라고 자조하기도 하고,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이 관성화되고 일상화되면 인격살인을 행하는 자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자나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게 된다. 
이 문제가 조직에서 발생하게 되면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현상이 시나브로 생겨나기도 한다. 일면 구조적으로 필연적이다. 
신입사원 혹은 경력사원 정도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격살인이 직접적으로 자기에게 가해질 때, 경력사원이든 신입사원이든 거기에 맞서려고 할 것이다.
이때 이 싸움은 굉장히 외로운 싸움이 된다. 왜냐하면, 기존 사원들은 이미 수도 없이 싸워봤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고로,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마음으로 피해 버리거나 자기 합리화를 해버림으로써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대구한국일보 쇄신을 추진하면서 내부에서 인격살인이 자행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만 억울함을, 분노를 표할 뿐 인격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그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인격장애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해자'와 그런 사실을 고지했음에도 믿지 않으려고 했던 조직의 관리자를 보면서 나는 정말이지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인격살인'이란 거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은 내가 묘한 시점에서 조직쇄신 책임을 맡았고, 그 심각한 문제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격살인인지를 모르고 행한 행동이라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를 보듬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의 존엄 앞에서 그 누구도 타자를 흉기는 물론이거니와 언어로써 죽일 수 없다. 나는 이 인격살인의 뿌리를 뽑기 위해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해 선후배들을 깜짝놀라게 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이 무방비로 거대하게 커버린 인격살인의 뿌리를 뽑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격살인의 당사자에게 미친 척하고 인격살인으로 응수했고, 이를 좌시하고 묵인한 구성원 모두에게도 인격살인의 칼부림을 보여줬다. 
오늘(27일), 우리는 그 인격살인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실체를 정확히 들여다봐야 이 조직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했고, 그것까지 치료해야 할 명분을 찾았고,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인격살인의 당사자는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아는데, 하느님의 자녀로서 인간존엄과 존중을 그렇게 훼손한 대가는, 무척 아프겠지만 반드시 치뤄야 할 것이다.
/심보통2016.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