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분법이다. 옳고 그름으로 가른다. 조화는 어울림이다. 옳은 것은 칭찬하고, 그른 것은 때론 눈감아 주고, 때론 피해간다.
대구한국일보 쇄신안을 추진할 적에 나는 정의 대신 조화의 묘를 살리려 했다. 하나 상대가 있는 일은 조화보다 정의를 앞세워야 할 때가 불가피하게 있다. 정의가 '칼날'과 짝을 이뤄 쓰이는 이유다.
칼 대신 병을 들었더니, 선배들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렇게라도 대구한국일보의 '용의 목구멍(아첨에 능한 자)'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으려 했다. 그건 선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원했던 바다. 하나 정작 정의의 칼날을 빼들었더니 선배들이 이해를 못했다. '용의 목구멍'의 역겨운 내 나는 목구멍에 칼만 겨우 겨누다 만 꼴이 됐다.
나는 사표를 던졌고, 모든 권한은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맡겼다. 대구한국일보가 머지않아 문을 닫게 될 지, 아니면 멋지게 비상할 지는 27일 워크숍에서 결정날 것이다. 건투를 빈다.
/심보통201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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