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한 '한참' 누나
얼마전 내 손에 신예 트로트가수 서인아의 CD 한 장이 들어왔다. 대구한국일보가 주최한 <내고장사랑대축제> 현장에서 받은 것이다.
대구에서 대전으로 올라가면서 '그냥 한 번 들어봤다.' 그러다 4번 트랙 <내가 누나야>에서 빵 터졌다.
타이틀곡은 <오빠>, 서브타이틀곡은 <하나요>인데, 내 귀에 꽂힌 건 4번곡 <내가 누나야>였다.
가사가 충격적이다. 이 가사가 가사를 넘어 사회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건 그냥 듣고 넘길 문제가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트로트가수의 곡을 듣고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나 반대로 트로트가수의 곡으로 사회문제를 들여보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나는 <내가 누나야>를 쓴 작사가는 우리사회 현상과 문제를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누나야>를 부른 서인아는 들어보니 실력파 가수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수 서인아보다 그가 부른 <내가 누나야> 가사를 살펴보자.
*내가 누나야(서인아)
1.
오빠 오빠 불러주면 언젠가 아빠 되겠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나도 몰래 오빠 오빠
아차차 차차 내 마음 첫눈에 반했나봐
살짜쿵 나를 보여 줄래요
# 사실은 내가 누나야 너보다 한참 누나야
예쁜남자 착한남자 만나보고 싶어 그랬어
나이야 가라 나이야
들켜도 상관 안할래
알콩달콩 사랑해 줄 한 사람
바로 나니까
2.
오빠 오빠 불러주면 언젠가 아빠 되겠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나도 몰래 오빠 오빠
아차차 차차 내 마음 첫눈에 반했나봐
살짜쿵 나를 보여 줄래요
# 사실은 내가 누나야 너보다 한참 누나야
예쁜남자 착한남자 만나보고 싶어 그랬어
나이야 가라 나이야 들켜도 상관 안할래
알콩달콩 사랑해 줄 한 사람
바로 나니까
나 쉬운 여자 아니야
나 그런 여자 아니야
예쁜남자 착한남자 만나보고 싶어 그랬어
나이야 가라 나이야
들켜도 상관 안할래
알콩달콩 사랑해 줄 한 사람
바로 나니까
사실은 내가 누나야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일모레 불혹을 바라보는) 나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10년 전 나는 <연상연하 커플(링크 참조)>이란 칼럼을 쓴 일이 있다.
이 글의 핵심은 "남자가 연상의 여인을 원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쉽지 않은 현상이다. 다만 연상의 여인을 흠모하는 남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어리다는 점에 주목해 '수태적령기의 여인'을 찾는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라는 것.
<연상연하 커플>이란 글은 2005년 당시 연상연하 커플이야기로 대박을 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쓴 것으로, 위 진단은 서울대 최재천 교수의 견해를 빌려 쓴 것이다.
되돌아보면 <내 이름은 김삼순>을 기점으로 연상연하 커플은 명징한 사회현상이 됐던 게 아닌가 한다.
당시만 해도 연상연하 커플의 구애 주체는 나이 어린 남자였다. 그 현상을 학자들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진단했었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남자들은 평균 2.5세 정도 어린 여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하고 여자들은 3.5세 정도 위인 남자를 원한다. 전세계 37개의 문화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다.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고구려 데릴사위제가 성행하던 때를 제외하곤 연상연하 커플이 자연스러운 적이 없었다. <[심지훈 문화칼럼] 연상연하 커플 中>
그 사이 연상연하 커플의 양태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누나'가 좋아서 연인이 되었다가, 취업이 어려워지고 취업을 했다 해도 직장의 안정성이 위태로워지면서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가파르게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먼저 사회에 진출한 '누나'가 전도유망하지만 모아 놓은 돈이 없는 '동생'을 낚아채는 현상으로 연상연하 커플의 양태는 진화해 갔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지금, <내가 누나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연상연하 커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가사로 보면,
누나는 자기가 뻔히 누나인 줄 알면서
우연히 만난 동생을 보고 부러(전략적으로)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 오빠 불러주면 언젠가 아빠 되겠지'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 누나는 좀 염치가 없는 누나다.
알고 봤더니,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데다,
자기는 실컷 연애를 해봤더니, 좋은 남자가 없더란다.
해서 착하고 멋진 연하남과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단다.
거짓 '오빠'로 시작해 깊은 관계가 되어, 나이가 들통나도 상관 없단다.
이 누나 무진장 일방적이다. 앞뒤 재지 않고 직진만 한다.
이 누나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미지수다.
그저 첫 눈에 반한 동생을 자기 남자로 만들겠다는 야심만 가득하다.
그러면서 자기 능력이 어떤지는 감추고, 자기가 그렇게 나쁜 여자가 아니니,
일단 꼬셔서 자기 남자로 만든 뒤, 나이를 공개해도 예쁜 사랑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로 유추가 가능한 것은 일단 이 누나가 한 미모 한다는 것 정도.
나머지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읽힌다.
나는 이게 현실세계에서 발생한다면, 이 누나는 나중에 사기죄로 수갑을 찰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 전도유망하지만, 재력이 미약한 동생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나야> 속 철면피 누나는 현실세계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프게도 등장했다면, 똑똑한 동생들이 잘 대처하기를 바란다. 사랑과 결혼은 지엄한 또 다른 현실세계의 문제이고, '한참 누나'와 살아야 할만큼 동생들이 그렇게 궁하지 않을 뿐더러, '한참 누나'와 결혼하겠다고 부모님께 데려가면 부모님은 뒷목 잡고 넘어가실 게 뻔하다.
동생들 키운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가면서까지 기어이 '한참 누나'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겠다면, 그건 동생들 부모님의 책임이 전적으로 반 이상이되, 배운 만큼 배운 동생들이 그런 사리분별도 못할 정도면 헛 배운거요 살아봐야 남는 것은 후회일전정, 현대의학 기술을 빌려 생물학적 나이를 가린 '한참 누나'와는 절대 멀리하라!
가사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지만, 신인가수 서인아의 가창력은 빼어나다. 그러니 내 귀에 팍팍 꽂힌 것이다. 서인아의 앞날에 서광이 비추기를!
/심보통201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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