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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시인 고산돌(1970~)

@심지훈 <솟대> 2016.9.6 作


‪#‎시인‬ 고산돌(1970~)
형이라고 해도 좋겠다. 3일 서울 프레스센터 뒤편 남도음식전문점에서 형과 점심을 먹었다. 형이 샀다. 차는 프레스센터 1층 스벅에서 마셨다. 내가 샀다.
나는 형이 하는 일이 기사가 된다고 생각했다. 해서 만났다. 만나서는 대구한국일보와 상생하는 일에 머리를 맞댔다. 형은 바로바로 호응했다. 12시에 만나 장장 4시간을 형과 함께했다. 
처음에는 그저 '뉴스되는 시인'을 만나러 간 길이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대한민국 IT업계 리딩그룹을 만난 일이 돼버렸다.
시인과 IT리더. 그러고 보니 그가 왜 시인이면서 신선한 뉴스메이커로 손색이 없겠다고 판단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는 그저 시인이 아닌 시인 이상의 대한민국 일꾼이었다. 
그는 37세 꼭 내 나이 때 천정부지로 고점을 찍었다가 고공낙하로 곤두박질쳤다. IT리더의 운명이었다.
형은 몸이 아팠고, 마음이 아팠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으리라. 그 세월이 어언 9년이다. 이제 겨우 몸을 추스리고 다시 세상과 부닥치기 시작했다. 그 결에 자신이 엎어졌던 그 나이의 젊은 작가를 만난 것이다.
형은 앙상한 몸을 가졌지만, 여전히 눈빛이 살아있었다. 태생적으로 똑똑했던 형은 여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기억력이 뻐끔뻐끔하지만, 여적 아이디어는 솟구쳤다. 내가 하나를 이야기하면, 하나를 쓱쓱 보태는 식이었다.
문화의 범위와 경계는 없다. 서울이면 어떻고, 미국이면 어떻고, 아프리카면 어떠랴. 나는 대한민국의 일꾼들을 대구한국일보로 집중시키는 문화적 광폭행보를 시작했다.
오는 9일 첫 번째 가시적 성과물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다. 형과 형의 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결국 대구한국일보와 함께 할 것이다.
형은 춘천 태생의 이 나라 게임산업의 퍼스트 펭귄(선구자)으로 한때 상종가를 쳤던 고산돌이란 시인이다. 형은 머지않아 정상 궤도에 다시 진입할 것이다. 저 솟대처럼 다시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형의 앞날에 건승을!
/심지훈 대구한국일보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201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