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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칼퇴근법


#<칼퇴근법>
내 어머니는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이하 통신공사)에서 꼬박 30년을 근무하셨다. 옛 기준으로 하면 한생을 한 직장에서 보낸 것이다. 통신공사는 우체국에서 1981년 12월 10일 분사 됐고, 어머니는 우체국에서 통신공사로 이직했다.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직장생활은 총 30년이지만, 통신공사 근무기간은 15년 남짓(1982~1998)이었던 셈이다. 어머니가 퇴직하고 4년 뒤, 통신공사는 KT로 민영화됐다.


1979년생인 내 기억으로 내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서류 보따리를 갖고 퇴근하셨다. 작은 앉은뱅이책상에 60촉 백열등 꽂힌 스탠드 하나 놓고, 밤새워 일하신 적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그러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8시까지 출근하셨다. 주 5일제 근무가 1998년 2월부터 시작됐으니, 어머니는 토요일에도 정상출근을 해야 했다. 


다 지난 일이지만, 이따금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 직장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낯이 붉어진다. 출근하자마자 여직원들은 비와 걸레를 들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상사들 커피 태워주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나름 엘리트 여성이었던 어머니가 자식새끼 먹여 살리기 위해 30년을 그런 대접 받고 사신 거였다.


"그땐 이거 아니면 죽는 줄 알았잖냐. 정말 죽기 살기로 일했는데..."


실제 어머니는 통신공사 연수에서 내리 1등을 차지했고, 그 증거는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다. 나는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의 그 행적들을 찬찬히 펼쳐 보곤 한다. 그걸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정말 어머니께 효도해야겠구나.'


어머니 퇴직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17년이 흘렀다. 그사이 사회는 초고도로 분화되었다. 어머니가 직장생활 할 때처럼 주판을 튕길 일도, 수기로 작업할 일도 없는 정보화사회가 되었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부닥치며 공동체 속에서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하셨지만, 요즘 직장인들은 개인플레이를 해도 상사가 어찌할 수 없는 풍토가 고착화되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해 본 바, 직장생활의 고충이라면 어머니 때가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어머니 때는 육체와 정신 에너지를 고루 발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직장은 힘 없는 여직원에게 유독 불리한 공간이었다. 칼퇴근은 언감생심이었다.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행여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이면 눈치를 봐가며 적당히 '사라져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20대 국회 들어 첫 발의로 '칼퇴근법'을 꺼내 들었다. 초과근로를 시키는 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형적인 얄팍한 포퓰리즘 법이다. 초경쟁사회에서 칼퇴근법으로 기업의 재량을 묶는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이 법을 발의한 더민주 이찬열 의원은 "칼퇴근은 월급쟁이 시절 내가 가장 바라던 삶이었다”며 “장시간 근로가 미덕으로 포장되는 문화가 없어져 모든 국민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일과 가정의 양립, 고용창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던 손학규 전 대표의 측근이다. 정가에선 '칼퇴근법' 발의를 두고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를 위한 길 닦기"라는 해석이 나돈다. 


이게 결과적으로 사실이라면, 이찬열과 손학규 그리고 더민주는 '참 나쁜 것들'이다.
/심지훈 대구한국일보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201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