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통문] 독립신문 사설을 읽다가
1.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 그때. 상상한다고 상상이 쉬이 안되는 때.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혼란했던 시대. 제국주의가 세계적으로 최고조에 이른 시대. 아래로는 일본이, 위로는 러시아가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시대. 그때 우리의 모습을 현재의 시각으로 아무리 잘 그려본 들 한계가 있음은 불문가지다. 우리가 그 시대를 읽고,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료를 탐독하는 것이다. 구한말 저물어 가는 대한제국을 이해하는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사료 중 하나는 <독립신문>이다.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순국문 신문으로, 을미사변 후인 1896(건양 1)년 4월 7일 창간되었다. <독립신문>을 현대 우리말로 번역한 서적으로는 <독립신문 다시 읽기-사설선집>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네 상식을 뒤집는다. 예컨대 <독립신문> 창간을 기점으로 이전 30년 사회와 이후 100년 뒤인 오늘의 사회 중 1896년의 모습은 어느 쪽과 더 흡사할까. 전자일 것 같지만, 후자쪽이 훨씬 더 닮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개항사'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일은 차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독립신문>을 통해 보면, 118년 전 대한제국과 현대 한국은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우리 현실과 결부해 몇 가지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아래 사설을 일독하자.
조선은 지금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과 같이 사는 터인즉, 그 사람들과 교제를 아니 해서는 못할지라. ...남이 대접을 하여줄 마음이 있도록 행신(行身; 처신)을 해야 정이 생기는 법이요, 정이 생겨야 친밀한 교제가 될 터이다.(중략)
외국 부인을 만날 때는 예(禮)를 사나이에게보다 더 공경하게 하여, 부인 앞에서는 담배를 먹지 않고, 부인이 있는 데서는 음담과 더러운 물건 이야기도 아니하며, 대소변 같은 말은 당초에 옮기는 것이 실례라. 남의 집에 갈 때 파나 마늘이나 냄새 나는 음식을 먹고 가지 않는 법이요, 더러운 옷이나 냄새 나는 몸을 가지고는 남의 집에 가지 않고, 남이 보는데 내 살을 보이는 것이 큰 실례요, 재채기를 어쩔 수 없이 할 지경이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무쪼록 소리가 덜 나도록 하고, (재채기를) 한 후에는 그 사람에게 용서하여 달라는 말을 하는 법이요, 남 앞으로 지나갈 때에는 용서하여 달라고 한 후 지나가며, 나의 부인과 인사를 할 때에는 부인이 먼저 손을 주고 손을 흔들자고 하면 부인의 손을 공경하여 붙잡고 한 번이나 두 번 잠깐 흔드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부인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아니하면 먼저 내 손을 내미는 것은 실례라.
남의 물정을 보고 좋은 것 같으면 좋다고나 할지언정 “값이 얼마냐”고 묻는 것은 천한 일이요, “나이가 얼마냐” “형세가 어떠냐”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다 실례라. 남이 보는 데서 코를 후비는 것과 이를 쑤시는 것과 귀를 후비는 것과 머리와 몸을 긁는 것과 먹을 때 소리 나게 입맛을 다시는 것과 국물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나게 마시는 것은 모두 실례라. 이에 무슨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지 말고, 칼과 숟가락과 젓가락을 상이나 접시 위에 소리 나게 놓지 말며, 음식을 먹을 때에는 아예 부정한 이야기를 하지 말며, 누구에 가든지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누가 청해 대접을 하거든 일주일 안으로 찾아가서 보고 전일에 대접한 것을 치하하며, 내 집안 이야기와 내 몸에 당한 말은 묻기 전에는 아예 말하지 말고, 몸은 장(늘) 꼿꼿이 가지고, 걸음을 지어 걷지 말며, 우스운 일이 있어 웃더라도 소리가 크게 나게 웃지 말며, 사람을 찾아볼 때에는 급한 일이 없으면 매양 오후 두시 후에 남의 집에 가는 법이라. 남의 집에 가서 할 이야기가 있으면 이야기하고 할 말을 다한 후에는 가고, 할 말이 없을 때에는 공연히 오래 앉아 있는 것은 마땅치 않느니라. 그 외 알 일이 무수하나 오늘날 다 말할 수 없으니 후일에 다시 더 기록하겠노라.
/외국인 교제의 예법/1896.11.14(토)
2.
<독립신문>은 외국인을 대할 때 예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오늘날 타인에 대한 예절로 봐도 무방한 것이다. 풀이하면 우리의 에티켓은 결국 외국인을 대하는 예절을 차용한 것이다. 이것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 옛 것만 익혀 새롭게 한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보다 좋은 것이라면 누구에서든 배워 나쁠 것은 없다는 논리는 현대에 와 맞아 떨어졌다. 그렇지 않다면 미제(美製)를 선호하고,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세태를 읽어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2004년에 <교수신문>에서 이례적인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장장 6개월간 이어졌는데, 주제는 '고종을 어떻게 볼 것인가-개혁군주인가, 아니면 무능한 군주인가'였다. 이 논쟁이 이례적이었던 것은 이종학문 전공자 간 논쟁이라는 점과 대선배 학자와 한참 아래인 학자간 논쟁이 한국의 풍토에서 무사히 마쳤다는 점이다. 당시 두 학자의 논쟁에 보증을 하고, 논의를 확장시키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한 교수들도 여럿 되는데, 그중 어떤 교수가 글을 이런 식으로 갈무리했다.
"나는 대한제국 시기를 거쳐 근대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이 지금 왜 이 정도밖에 살아갈 수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 교수의 촌철살인에 무릎을 탁 치며 '용타!'라고 찬동했다.
다시 사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100년 전의 저 기본예절이 오늘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데, 우리사회는 100년 전보다 예의가 있는가 없는가, 나은가 못한가. 없고,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점점 더 싸가지 없는 사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1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예절교육의 학습효과는 점점 곤두박질치고 있다. 왜 그런가. 제멋대로를 가능토록한 자유, 너도나도 똑같아야 한다는 평등. 이 두 민주주의 근간이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저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좋은 걸 자유로, 남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 억지를 부리는데 써라는 걸 평등으로 아는 치들이 많아서이다. 어째서 그런가. 의식이 천박해서다. 자유든, 평등이든,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의식이 바로서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념과 체제도 무질서의 원흉이 된다. 우리사회는 지금 그 짝을 향해 저 죽을 줄 모르고 고속주행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서울시교육감 선거 그리고 매일 같이 신문지면에 오르는 인면수심의 사건들... 이건 애오라지 '의식장애자'들이 이 사회에 판치기 때문이다.
/심보통20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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