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창극 주인공 시점
#1.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태는 묘하게도 '인간 문창극 탐구'를 부추기고 있다. 그 원천은 뻔히 보이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문창극의 처신에 있다. 좋다. 끝까지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끝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에 교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평가하는 데는 그의 행적과 발언,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정부 인사검증팀에서도 고위공직자를 대통령에게 천거할 때 '세간 평판(Public reputation)'을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판은 본디 소극적이고 흐릿해 한 인간을 평가하는 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소지가 다분하다.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가 후에 닥쳐올 후환을 염려한 탓도 있을 것이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소극적 태도가 평판의 본질을 왜곡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사시스템을 가동해 인재를 추리고 추려 선발해도 낙마자가 공공연한 것은 결국 평판작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 그런데 문창극 사태는 우리에게 엇나간 평판으로 자의든 타의든 해당 문제의 인사가 물러나는 수준에서 일단락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 문창극'을 좀 더 면밀히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 탐구'는 사실 인간이기에 할 것이 못된다. 누가 누구를 탐구해야 할 지경이라면 그건 좋은 일이기보다 나쁜 일, 최악의 일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탐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소설 작법에 주목하면 능히 가능하다고 본다. 소설의 시점은 중학생 정도면 구분 가능하다. 서술자가 작품 속 인물이나 사건 등을 바라보는 위치와 태도에 따라 1인칭 주인공, 1인칭 관찰자, 3인칭 관찰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나뉜다. 정부 인사팀이 벌인 세간 평판 작업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인사팀이 세간의 의견을 참고해 문창극을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태껏 이런 것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신앙처럼 믿어왔다. 평가자 스스로가 평가를 하면 그것은 주관적이라고 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하는 일은 주관적인 것도 주관적인 것이고, 객관적인 것도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시스템 혹은 기준이라는 것으로 묘하게 호도하고 있다는 점을 곧잘 잊어버린다.
#3. 이제 문창극 사태는 우리에게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러니깐 문창극 주인공 시점으로 보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 주문의 주체는 바로 문창극 본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것은 문창극 본인이고, 문창극 스스로가 '제발 내 눈으로, 내 입장에서 세상을 좀 봐 달라'고 절규하는 듯하다. 부디 '인간 문창극'을 제대로 판단해 달라고 눈에 힘을 주어 묵시적으로 주문을 거는 듯하다. (하느님의 힘을 빌려.) 좋다. '인간 문창극'을 탐구해 보자. 철저히 문창극 주인공 시점으로 대한민국을 보고, 대한국민을 보자.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탐구해보자.
#4. 문창극, 나는 올해로 67세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공부를 곧잘 해 서울로 유학을 왔다.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입학했다. 권위주의 정부가 꼿꼿이 버티고 섰던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내 힘으로, 내 노력만 갖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와 회사에 입사했다. 신문사에 입사해서도 줄곧 승승장구했다. 30년 넘게 한 직장에 있으면서 근 30년을 정치부에만 있었다.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이 성공가도를 달려온 사람들이 득실댔다. 누구 하나 운으로, 누구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왔다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피땀 흘려 노력해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현직으로서 내 마지막 직책은 대기자였다. 기자로서 최고의 명예다. 대기자를 아무나 하나, 나처럼 끊임없이 노력을 해도 받을까 말까한 직책이다.
#5. 나는 기자시절 강건하고, 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내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성실히 살아왔다. 내 자신감의 원천은 거기에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만만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정치부 기자로,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 어떤 때였는가. 나는 언제나 '슈퍼 울트라 갑'이었다. 내 한 마디면 안 되는 게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덕분으로 누린 영광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내 반의 반의 반만 노력했어도 나와 버금가는 삶은 살았을 거라고. 이 생각은 여지것 매 같다. 나는 열혈기자, 정의로운 기자답게 현직에서 물러나 자본에 기웃거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후배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재임에 성공, 6년을 지냈다. 그리고 물러날 무렵, 또 한 번 나는 골몰한 끝에 자리 이동에 성공했다. 내 나이에 이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내고도 폐인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나만큼 인생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장에서 물러날 때, 내 스스로 살길을 마련했다. 그렇게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로 옮겼다. 그것도 그냥 교수가 아닌 '석좌교수'다. 석좌교수도 아무나 하나. 나처럼 대단히 노력해야 되는 거다.
#6. 그런데 말이다. 어느 매체가 이번에 이것을 문제 삼았다. 이사장 스스로가 '셀프 석좌교수'를 했다는 것인데, 사정 모르는 소리 마라. 대한민국 후배 언론인 중에서 '고려대 석좌교수'로 갈 만한 인재가 눈을 씻고 봐도 없더라. 그러니 어쩌나 자금은 있지, 누군가는 보내야지. 할 수 없이 내가 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니깐, 그 진보매체는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언론인을 꿈꾸는 후배학도에게 나처럼 스팩 되지, 인물 되는 사람이 스승이 되는 것은 그들이 감사할 일 아닌가. 나는 1년이면 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모교로 돌아가 후배들에게 헌신할 요량이었다. 그래서 서울대가 초빙해,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벌이가 시원찮다. 내가 아무리 강직한 언론인이라도 내 나이에, 내 스팩에 품위 유지는 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살이라는 것은 저하기 나름이다. 나는 총동창회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소박한 지원이다. 내 인건비, 조교 인건비, 연구실 소품비 정도다. 그걸 갖고 또 그 진보매체가 문제를 삼았다. 유례없는 방식으로 총동창회 공금을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웃기지 마라. 길은 없으면 만들어가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7. 이렇게 소신껏 바르게 잘 살아온 내게, 국민들은 국무총리 자격이 없다고 한다. 내 글과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은 송구하게 생각한다. 하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달라. 한 문장을 보지 말고, 전체 맥락을 봐 달라. 나 같은 수재가 쓴 글과 뱉은 말이 틀 릴 리가 있겠나. 국민이 내 속을 몰라도 너무 몰라 속상하다. 다만 내가 공개적으로 뱉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살아온 삶은 일반 민초들이 살아온 삶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앙지 정치부장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내일 모레 칠순을 바라보는 내가 아직도 혈기왕성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나 하는가. 나, 인간 문창극은 대한민국의 모범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그게 잘못인가. 시골에서 나서 자수성가한 내 삶이 잘못인가.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하나하나 해법을 스스로 마련해 살아온 것이 잘못인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리도 흔들어재끼는 것인가. 나, 문창극은 이번에도 이전의 인생 역정에서처럼 돌파구를 마련하고, 내 뚝심으로 이 사태를 잘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수재요, 애국자다. 적어도 귀하보다는 67년 인생을 잘 가꾸고 일구어왔다고 생각한다. 나를 감히 평가하려 들지 말라.
#8. 2014년 6월 16일 현재, 우리는 진풍경을 며칠째 감상 중이다. 내가 보기에 종심소욕(從心所欲)의 나이에 이른 문창극 씨는 두 가지를 명확하게 인지 못하는 것 같다. 첫째는 국민여론이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건 괜찮다. 생각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하니깐. 하지만 둘째는 다르다. 이것이 지금 정치의 장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라는 점이다. 정치는 태평할 때는 몰라도, 시국이 뒤숭숭할 때는 민심이 캐스팅 보트가 된다. 다만 문창극 사태의 경우는 그를 비호하는 세력이 청와대라는 점이고, 그 반대에 민심을 등에 업은 야당이 문창극 후보자만큼이나 뚝심 있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문창극 개인으로서는 '종심소욕'을 작심한듯 하고, '문창극 사태'는 대통령 대(vs) 국민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하느님은 누구 편을 들어줄 것인가. 오, 주여!
/심보통 20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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