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여자친구와 싸운 이야기

 #여자친구와 싸운 이야기

 예로부터 구경 중 으뜸은 불구경이고, 그 다음은 싸움구경이라 했다. 내 치부로 남을 웃게 하는 것이라면 화제 제공자는 무조건 쉬쉬하는 게 상수 일 터. 하나 나는 기록해 두기로 했다. 찻방에 홀로 앉아 차 한 잔 하면서 그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미리 고지하지만 내 싸움이야기는 재미는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볼거리는 능히 줄 것이다.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나는 어제 참담한 심정이었다. 대전에서 김천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왜’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일단은 여자친구 만난 이야기부터 하려 한다. 그 다음 싸운 이야기와 관계있는 내 사유방식을 들려준 다음, ‘왜’에 답하고자 한다.


 1.

 내가 여자친구를 만난 건 올해로 3년째다. 첫 만남은 대학원에서였다. 같은 강의를 들었다. 첫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씩씩한 성향이 좋았다. 나는 이성을 볼 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본다. 내가 작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만화 속에 나오는 지고지순한 순정녀를 이상형으로 삼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성관이 바뀌었다. 착하고, 얌전한 여성은 외형적이고, 대단히 도전적인 나를 이해하고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칙에서 알았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 당찬 20대 여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을 만나기도 어렵긴 매한가지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이라고 흡족해 하면 싸가지가 밥 말아 먹기 일쑤였고, 당차다 싶으면 인물이 차지 않았다. 결국 이 둘을 갖춘 여자란 내게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여자친구가 내 눈에는 둘을 다 갖춘 것으로 보였다. 일단 합격! 그렇지만 신중했다. 한 번 보고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천천히 지켜보았다. 외형적 성향은 이따금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그 무례함을 상쇄시킬만한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1년을 지켜보고 마음을 전하려 기회를 보고 있는데, 전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대구를 떠날 일이 없는 열혈 기자였고, 그녀는 대구에서 대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대구에서 7년째 근무해 오던 터라 직장 성격상 전근이 내 눈에는 이례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일단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부당한 사유이거나, 말 못할 사정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찍어 누르려 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전근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 지방보다는 수도권 근무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었다. 결혼 마음도 없었기에 배우자감으로 기자에 대해 생각해 본 바도 없었다.

 나는 붙잡을 명문이 없었다. 나 역시 대구-대전 간 결혼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기자라는 직업상 아내의 내조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주말부부는 서로에게 힘들겠다고 여겨졌다. 그보다도 그녀가 더 큰물에 가서 더 멋진 남자를 만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대전으로 떠났고, 나는 일상에 바빠 지냈다. 1년에 한 번 정도 대학원 문제로 문자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 무렵, 나는 문득 어쩌면 그녀가 결혼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람공부에 서툴다. 스펙을 쌓아 직장 들어가는 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람 보는 눈이 나이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다. 이 점을 인지하고 사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하긴 인지했다면 사람공부에 열심인 젊은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저간의 사정으로 그런 사람이 잘 없는 것 같다. 내가 기자생활 4년차에 깨우친 것은 ‘사람공부’가 우리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사람을 가늠할 줄 알아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사람 보는 눈의 핵심은 사람을 알고 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어찌 해야 하는가. 이건 뾰족수가 없다. 어학 공부하듯이 주구장창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그런데 20대 직장인의 인간관계란 빤하다. 그나마 기자였기에 사람공부가 절로도 되고,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자 4년차에 과연 그녀의 진면모를 볼 사내가 있긴 할 것인가 싶었다. 요새 청년 풍속상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돌아설 사내가 많을 것, 게다가 그녀 또한 남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데다, 직업상 대찬남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등의 이유로 배우자 만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다만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와 나이차가 제법 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 해 볼 요량은 없었다.

 그러다 5년 2개월 만에 신문사를 그만두었고, 짐을 싸들고 서울로 갔다. 신문사 생활을 정리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퇴사 신고’를 했고, 신고 대상에 그녀도 포함시켰다. 그녀는 좀 놀라는 눈치였다. 내 기억으로는 ‘뭐 먹고 살려고요.’라고 물었던 것 같고, 나는 ‘젊은 놈이 먹고 살 걱정을 왜 합니까. 어떻게 살 것인지를 걱정해야지.’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기자 아니니까 한 번 봅시다.’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남자친구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서울로 한 번 올라오라고 했다. 내가 내려 갈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올라오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먹힐 것을 안 것이다. 원래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상수다. 그녀는 공연관람을 이유로 서울에 올라온 김에 나를 만났다. 2011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 둔 주말 압구정의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시외버스로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그녀는 내게 ‘알아서 하라’는 듯 언질을 주었다. “내 동생이 한 달 전에 결혼했어요. 엄마가 걱정하세요.” 나는 그녀가 떠난 뒤 문자를 넣었다.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께 폐 끼치지 말고, 친구들한테 눈치 없게 놀자고도 하지 말고 서울 오세요. 나랑 보냅시다.’ 그녀는 ‘상황 봐서’라고 했지만, 그건 ‘오겠다’는 다른 표현이었다. 직장인 여친과 백수인 나는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 

 나야 자신 있었지만, 그녀는 나의 뭘 보고 마음을 주었을까. 나는 그것이 사뭇 궁금했다. 언제고 한 번 그녀는 그 이유를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선을 100번 정도 봤을 거예요. 그런데 만나는 남자마다 시시하더라고요. 꿈이 없어요. 뭐 어떻게 살겠다는 비전이 없어요. 그런데 자기는 있었잖아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내 꿈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돈 얘기였다.

 

 2.

 내가 5년 2개월의 첫 직장생활을 마감한 후 만난 사람을 정리해 보니 명함으로만 3천명을 육박했다. 명함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람까지 합치면 5천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대구에서 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돈 가졌다는 사람치고 돈 쓸 줄 아는 사람이 정말이지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갯벌에서 진주를 캐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돈 좀 가졌으면서도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을 의외의 곳에서 만났다. 

 회 도매를 병행하면서 싼값에 회를 파는 시스템을 대구에 최초로 도입한 이는 박천수라는 사내다. 그는 열아홉 살에 대구 서구 재래시장에 리어카로 회를 떼다 팔아 돈을 모아 1.5톤 트럭으로 세를 키웠고, 그 다음 또 10평 남짓한 횟집에 전세 들어 횟집을 키워 지금은 도매와 병행한 대형 횟집을 대구, 구미 등 전국에 7군데를 운영하는 중견기업인이 되었다. 이른바 자수성가형 CEO다. 그는 화통하다. 어렵게 돈을 벌었으면서도 돈을 쓸 줄 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 소위 ‘먹물’에 취한 선비와 비슷했다. 같은 부류만 인정하는 편협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를 만나면서 내 몸에 배인 먹물을 뽑아내고, 동시에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할 소이를 발견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멋진 사내였다. 아무리 갑부라 봐야 뭐하나 지키기에 바쁜 사람보다 번 돈을 사회에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것 아닌가. 

 그러면서 나는 쇼펜하우어의 금언을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였다. 쇼펜하우어는 참으로 멋진 말을 남겼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두 가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삶이 더 나은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른바 ‘본문 인생’을 사는 사람과 ‘각주 인생’을 사는 사람 중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마땅히 ‘본문 인생’이다. 생각해 봐라. 자신의 삶을 본문보다 각주가 많은 인생을 살면 얼마나 기형적인가. 공부를 해 본문을 채워야지, 생의 전선에 뛰어들어 귀동냥으로 세상을 아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부해 알아가는 것보다는 가치가 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박천수 사장을 만나면서 쇼펜하우어 말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각주 인생을 살았으면 어떤가. 본문 인생을 산 사람보다 인간구실을 하고 살면 그만 아닌가. 쇼펜하우어가 말하지 않은 예외조항이 있다면, 나는 박천수 사장 같은 이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쇼펜하우어와 대척점에 선 고수를 만났다. 바로 장자다. 

 장자는 역사적 위인(제나라 환공과 수레바퀴 만드는 장인 윤편)을 논의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책이 왜 쓸모없는지 알려주고 있다. 들어보자. 


 환공이 마루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이 마루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몽치와 끌을 내려놓고 환공에게 말했다. 

 “감히 묻자온데, 공이 읽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네요.” (聖人之言也.) 

 윤편이 다시 물었다.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이미 죽었네요.”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군요.”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 기술자 따위가 어찌 왈가왈부하는가? 나를 설득한다면 무사히 살려두겠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게 되리라.” 

 윤편이 대답했다. 

 “저는 제가 평소에 늘 하는 일로 살펴보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렁거려서 꽉 맞물리지 않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않고 덜 깎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 감각으로 터득해 마음에 흡족할 뿐이어서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바로 그 사이에 비결(기술)이 존재합니다. 저도 이를 제 자식에게 일깨워줄 수 없고, 제 자식도 저에게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가 70이 됐지만 늘그막에 아직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전해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군주께서 읽고 있는 것도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 


 쇼펜하우어가 공부의 당위성을 이야기했다면, 장자는 공부의 방법을 이야기한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책상머리 공부를 이야기했다면, 장자는 현장학습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박천수 사장의 삶을 풀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정할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와 장자의 중간자적 입장, 한 마디로 말하자면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지성’은 쇼펜하우어의 ‘본문 인생’을 추구하며 행동만 하는 지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부를 축척해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박천수 사장과 같은 삶을 본받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자친구에게 내 건 모토다.

 

 3. 

 나는 신문사를 나와 3년을 준비하고, 4년째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신문사 봉급에 비하면 훨씬 나은 봉급을 받고, 대우도 받는다. 그런데도 나는 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실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나는 물론 가진 게 없다. 벌어서 살아야 한다. 이제 자전거에 체인을 걸었으니,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가속도가 붙는 건 차차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나이에 비해 늦다는 것이고, 돈이란 게 쉽게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제부턴가 여자친구는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기분 좋게 올라갔다가 기분이 상해 내려오곤 한다. 그런데 어제는 받아내기가 힘들어 한껏 퍼부어주었다. 다시 풀긴 했지만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밤에 또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엠넷으로 들은 트로트는 <내 나이가 어때서>다. 아마도 노년에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인 듯한데, 듣다 보니 ‘아무렴, 내 나이야말로 어때서!’ 싶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했다. 추호도 의심치 말고 현재를 즐기는데 올인!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 또한 지나가리니, 쨍하고 해뜰날 반드시 올지니!

/심보통201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