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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수영이 가르쳐 준 것

#수영이 가르쳐 준 것

내가 사는 김천은 어느 틈에 '스포츠 도시'로 새 단장되었다. 옛날 관아가 있던 김산(金山. 현 구읍)을 지나 김천과학대학교 직전에 김천문화회관이 있고, 그 뒤편으로 김천실내수영장을 비롯해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헬스장 등 각종 스포츠 시설이 자리해 있다. 김천실내수영장은 라인이 50m인데다 국제대회규격으로 지어져 한 달에 일주일씩은 각종 수영대회가 열린다.


김천은 일찍이 삼산이수의 고장(사실 우리나라에 '삼산이수 고장'은 널렸다. 예컨대 세종특별자치시도 삼산이수의 고장이다.)으로 불렸다. 산 좋고 물 맑은 도시란 얘기다. 김천 물이 맑은 건 시골이어서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영장 물이 맑고 깨끗한 것을 보고 삼산이수라는 말이 그저 나온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수영을 시작한 것은 작년 6월이었다. 누나의 제안이 있었다. 누나는 허리가 좋지 않아 먼저 수영을 시작했는데, 효과를 좀 봤다. 나는 손목이 좋지 않은데, 물 속에서 웨이브를 타다 보면 낫지 않을까 기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시절 직지사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에서 개헤엄을 쳐 가며 여름 한철을 난 가락이 있던 터라 돈 주고 수영 배우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도 손목을 생각해 속는 셈 치고 해 보기로 했다.


한 삼일 물을 먹었지만, 그 뒤로는 초급반부터 제법 잘 따라갔다. 수영장에서는 네 가지 유형의 수영법을 가르쳐준다. 물론 맨 처음에는 발차기부터 가르친다. 그런 다음 자유형, 배영, 평형, 접영으로 어이진다. 나는 넉 달만에 상급반에 진출했다. 드디어 접영을 접수할 차례.


수영을 하려면 춤을 좀 출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접영을 배우면서 알았다. 나는 몸치다. 아니 무도회장을 취재 차 단 한 번 가 본 게 고작이었으니 춤추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강사는 내게 뒤뚱대는 나무토막 같다고 했다. 열심히 시키는대로 해도 내 자세가 웃기는지 낄낄대기만 했다.


접영만 두 달 했는데,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5월 한 달을 쉬어보기로 했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고, 마음만 급해서는 되는 일도 안 된다. 사실 자유형, 배영, 평형을 배울 때 마인드맵이 효과적이었다. 머릿 속으로 강사의 시범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 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접영은 그게 안 되었다. 한 달 하니, 웨이브가 되긴 한다는데 발차기와 팔의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마인드맵도 무용지물이었다. 지난주말 너무 더워 일일권을 끊어 수영장을 간 일이 있다. 그때 우연찾게 한 여성분의 접영을 보게 되었다. 오리발을 낀 채로 한 마리 인어처럼 발을 구르고, 버터플라이 자세로 팔을 뻗는데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분의 자세를 몇 번이고 관찰한 뒤,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우와! 된다, 돼!' 그렇게 접영이 뚫렸다. 일주일 동안 그 자세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수영을 시작한 오늘 자유반에서 혼자 연습해 보았다. 확실히 웨이브와 버터플라이 자세가 나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부드럽게 가슴팍이 물 위로 떠올랐다.


살다보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숨을 고르고 갈 필요가 있다. 당장 뜻한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 찬찬히 생각해 보면, 온몸의 기운이 모아져 뻥하고 뚫리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런 걸 두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지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우는 사람이 많은 날이다. 당선자는 기쁨의 눈물의, 낙선자는 고배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당산자는 됐고, 낙선자는 숨을 고르고 온몸의 기운을 제대로 모으시길 빈다.


아, 차차... 수영해서 손목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보다 컴퓨터 작업을 더 오래 할 수 있게 되었다.

/심보통 20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