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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문창극 프리즘

[칼럼] 문창극 프리즘

 박근혜 정부가 국무총리 지명자로 내놓은 ‘문창극 카드’는 일단은 신선했다. ‘수첩인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여기다 딸만 셋이라 자녀병역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점, 기자 외길인생으로 금전적 혜택을 누리는 전관예우와도 빗겨나 있다는 점 등이 직전에 낙마한 안대희 씨와 견주어 비교우위로 꼽혔다. 당초 청문회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정부와 여당은 점쳤던 것 같다.


 그런데 총리지명 사흘 만에 분위기는 영 ‘아니올씨다’로 흘러가고 있다. 그가 썼던 칼럼과 특히 교회 장로로서 했던 교회강연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몇 가지 과거 행적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자 있겠냐만은 그의 글과 말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손 쳐도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국무총리감으로는 국민의 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인 듯하다. 이렇게 되면 안대희 씨가 낙마한 이유나 문창극 씨가 고전하는 이유는 매 한가지다. ‘국민정서법 위배’다. 


 여기서 ‘문창극 논란’을 리바이벌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논의의 폭을 넓혀 대한민국 현주소를 가늠해 보는 쪽이 훨씬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른바 ‘문창극 프리즘’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문창극의 의식은 일면 곧다. 개인적으로 중앙일보를 10년 넘게 구독해 왔지만, 문창극 칼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그의 의식이 일면 곧다고 말하는 이유는 서울대 초빙교수로서 했다는 마지막 강연 발언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숲을 보면 나무가 자연의 질서 안에서 해를 좀 더 받기 위해 애를 쓴다”며 “젊은 사람들도 남한테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자립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자립의지 박약의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가하는 일침으로 ‘어른다움’이 읽혀 좋았다.


 그런데 교회발언은 그 반대편에 있는 것 같아 적이 당황스럽고, 실망스럽다. 교회라는 특수공간에서 장로로서 했다는 발언이라는 점과 보도가 다소 왜곡됐다는 점은 이해하고 인정한다손 쳐도, 문창극의 의식은 국무총리감으로서는 심히 유감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구한말) 우리 피에는 공짜로 놀고먹는 게 아주 박혀있었다”다며 “일본 식민지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의 뇌리에는 식민사관이 뚜렷하게 박혀있다. 서울대 대학원 강의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사과할 게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문창극의 시각’이 대한민국 지도자 보수층의 보편적인 관점이라면? 실로 섬뜩한 것 아닌가. 사실 식민사관론은 오랫동안 내재적발전론(일제가 아니었어도 우리나라는 근대화에 성공했다!)을 억누르고 있었다. 2004년 <교수신문>에서 고종과 그 시대를 평가하는 지상논쟁이 일면서 내재적발전론이 전에 비해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식민사관론자들에게는 그들의 논리를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 논리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한말 우리 국민이 게으르고, 더럽고, 의지박약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사실 선교사, 외국기자 같은 이방인들의 시선에 의해서였다. 이 평가가 우리 국민이기도 한 누군가에게 식민사관의 명분이 되었다. 문창극은 한국전쟁의 비극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명분 역시 “우리 민족의 나태성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식이다. 


 결국 우리네 지도부 보수층이 봤을 때 ‘조선 놈들은 후려쳐야 말을 듣는다’는 괴상한 논리가 성립된다. 도무지 자립, 자조란 걸 모르고 사는 게 우리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제시기라도 거쳤기에, 박정희라도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렇게라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창극 개인의 논리가 아니라 실은 대한민국 지도부 보수층의 생각이라면? 누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문창극은 마지막 강의에서 이런 말도 했다. “어느 사회나 갈등이 있지만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균열이 생겼다”며 “빨리 불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고. 정령 누가 누구를 불신하고 있는가. 나는 문창극 개인의 참극으로 이 문제가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 ‘문창극 프리즘’은 순전히 나만의 오버이길 바란다.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고위공직자로 나서려는 이들은 ‘국민정서법’을 미개한 의식쯤으로 간주하는 그 의식부터 뜯어고쳤으면 좋겠다. “사과는 무슨….”이라는 문창극 후보자의 답변은 국민정서를 ‘개똥’으로 여기는 것으로 읽혀 불쾌하다.

/심보통201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