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찬
엊그제 대구 수성구 모처에서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전 대구시장 한 분을 모시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인터뷰 자리는 아니었지만, 기사라는 틀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자리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뜻밖에 모양새였다. 참석인원은 모두 7인. 졸지에 7인의 만찬장이 돼버렸다. 물론 이 자리는 호스트에 의해 기획된 자리였다. 내일 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어른이 말씀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한 배려 차원으로 읽혔다.
귀동냥한 바로는 이날의 연사는 달변가라 했다. 메모광이란 얘기도 얼핏 들었다. 그의 집엔 메모수첩 박스만도 엄청나다는 정보도 접했다. 호스트는 내게 이 어른의 이야기만 잘 정리해도 의미가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런데 정식 인터뷰 자리는 아니란 모호한 얘기가 붙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기사가 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연사로 나선 전 대구시장은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탄탄대로를, 역사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어찌됐든 옹골차게 지르밟고 이날까지 온 분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그의 이력서가 그걸 구구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차이나풍의 와이셔츠에 검정 양복을 입고, 검정불테 안경을 쓴 채, 약속시간 정각에 룸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이 꼭 신부같았다.(그는 유학자의 집안에서 자란 기독교 신자이다.) 최근 무리한 특강으로 몸살이 났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양해를 구했다.
호스트는 그 점을 아쉬워했지만, 만찬은 시작되었다. 연사 입장에선 나를 포함해 참석자 중 4인이 초면이었다. 호스트는 4인에게 소개 시간 2분을 주었다. 명색이 기자인데 할까말까 하다가 호스트가 대선배인지라 주어진 2분을 소화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만찬에서 1시간 30분 가량은 호스트 주도로 초대받은 4인이 이런저런 일상사를 주고받는 데 할애됐다. 연사가 경청 모드로 일관하고 있는 통에 나는 약간 조바심이 일었다. 습관의 위력에 일말의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1시간 30분이 지나갔을 무렵, 연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몸살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대자의 말을 낚아채 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들은 대로 달변이었다. 그런데 3시간 30분간 그는 달변이기만 했다.
그의 종횡무진 화법은 나로 하여금 굉장히 컴플리케이티드(!)하게 만들었다. 박학하다는 것과 다식하다는 것은 형제쯤 된다. 그러나 그것에 조리있다는 것과 명쾌하다는 것이 뒤따르지 못하면, 누군가는 생고생을 하게 된다.
말의 속성은 번짐이다, 글의 속성은 정렬이다. 어떤 명사의 말이라도 장황해지면 그것을 날것으로 글로 옮겨 쓸 수 없다. 더군다나 의식하지 않고 하는 말이라면, 더더구나 널리 퍼지고, 그럴수록 반듯하게 쓰기가 어려워진다.
이럴테면 그는 요즘 주로 인문학 강의를 한다고 했는데, 인문학적 소양을 이야기하다가 일본을 배워야 할 까닭을 이야기하면서 일본사를 읊다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참을성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로 이어갔다. 달변은 번짐을 커버하기 일쑤다. 청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쓰겠다는 자는 골치 아파진다.
그런데 3시간을 들어보니. 온통 퍼짐과 번짐 뿐이어서 알맹이가 없어보였다. 알맹이를 잡아주는 게 내 역할인 것은 알겠다. 문제는 인문학 전도사가 된 노년의 전직 대구시장의 이야기를 특별한 목적 없이 펼쳐 보인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삶과 앎을 이 분을 통해서 교감하기에는 드넓은 완충지대가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어떤 걸 알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는 근본적으로 '깜냥대로이지' 지명도 있는 혹은 사회의 어른 한 사람이 일갈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이 분의 말씀을 누구를 위한(공략 대상) 글로 풀어야 할 지 그 너머의 문제- 왜 제 인생을 제가 가꾸게 만들지 않고, 이건 오르고 그건 그러다는 식으로 자꾸만 가르치는 말과 글이 우리사회에 난무해야 하는 걸까-가 목구멍에 걸린 가시마냥 칼칼대는 것 같았다. 그 놈에 허무맹랑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참 사람 여럿 골치 아프게 만든다 싶다.
/2015.5.27 심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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