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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조현아와 박창진


#조현아와 박창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는 갖가지 해설을 낳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경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더불어 우리네 삶의 인생 유전(流轉)이 얼마나 무섭게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여서도 눈길이 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항공 오너 딸 조현아는 인간경영의 실패 사례로, 사무장 박창진은 인간경영의 모범 사례로 삼으면 좋겠다. 


 또 진상 조사 국면에서 오고간 쌍방간 진실게임은 박창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조현아를 비롯한 오너 일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우리사회 얼마나 짙게 드리워 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묻자.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가. 조현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박창진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 맞았나. 우리 언론은 조현아가 틀렸고, 박창진이 맞았다고 말하고 있다. 진짜 그런가. 


 우리나라는 왕조 국가 체제에서 벗어난 게 고작 100년이다. 1세대를 30년으로 잡는 옛 기준으로 하면 3세대가 흐른 시간이고,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기껏 1세대가 흘러갔을 시간이다. 통상 조선왕조 500년이라 하면, 이성계가 개국한 1392년부터 경술국치가 있은 1910년까지 정확히 518년을 가리킨다. 


 그 후 일제치하 36년간은 주종체제가 왕조체제를 대체했다. 주종체제에서 어쨌든 우리네 선조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주권을 행사했고, 주권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친일행위를 했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의 민초들은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왕조체제든, 주종체제든 중립적인 위치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인구 중에서 색출된 친일파와 파악된 독립운동가의 통계가 그렇게 선명하게 드러날 리 없다.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일제가 패망해 해방을 맞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지만, 같은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창건됐다. 이때부터 사실상 한반도는 둘로 쪼개졌다.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 이념 논쟁으로 좌는 우에게 우는 좌에게 산발적으로 총부리를 겨누다가 결국 대전을 치렀다.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1953년 7월27일 정전에 접어들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우리네 삶의 양식은 주체적일 수 없었다. 1960년때까지도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아직도 왕조시대인 양 양반과 상놈이 건재했다. 한 번 고착화된 삶의 양식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버러지 같다. 이승만 정부의 수뇌부들은 일제에 붙어먹다 신생정부 탄생으로 기사회생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대한을 위했고, 민국을 위했다. 잘 위했을 리 없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일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국가경영이란 거대 명분 앞에서 허허실실댔다.

 

 박정희의 군사정부는 어찌보면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역시 대한과 민국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 이후 정권 역시 오십보백보였다. 민주화, 민주화 하지만 우리가 어디 민주화된 나라에 살고 있는가. 민주화라는 형식 속에 여전히 종속된 삶을 지난 기십년간 살아왔다. 법치와 준법을 기치로 민초를 옥죄고 잘못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우리 현대사는 갈지자로 쓰여왔다. 


 또 묻자. 다시 1997년 IMF가 와 금 모으기 운동을 한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 돌반지며, 결혼반지를 스스럼 없이 내놓겠는가. 그럴 국민은 많지 않다. 그 많은 금 뭉치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아는 국민은 대체 누구이고, 몇이란 말인가. 무지렁이 농부도 촌부도 그것쯤은 안다. 헌데 무지하니까 그냥 눈 감고, 모른 척하고 사는 게 우리네 민초들이다.


 그런 순진한 삶에 대해 근본은 지뿔도 없으면서 돈 좀 있는 자들이 재벌이란 기형적 이름을 갖고 전횡하고 있다. 1960년대도 그랬고,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부사장 조현아는 사무장 박창진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 박창진은 그저 그런 무지렁이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 항공사 사무장답게 세상을 두루 경험하고 익혔던 것 같다. 인생경영을 제대로 해 온 인재로 보인다. 되레 조현아와 그 일가가 보인 이번 사태의 대처를 보면 거의 유아기적 발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착각,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람을 대해 본 일이 없는 듯한 표현방식, 뻔한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행동양식... 이런 것들은 조현아 뿐 아니라 그 부모들이 인간경영 대신 자본경영에 치중해 온 결과로 읽힌다. 


 재벌의 외형 확장이 곧 정신적 성숙인 양 착각하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기실 조현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기관장이라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함량미달일 때가 많다. 


 "나는 진실을 말했고, 힘들겠지만 스스로 대한항공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비범한 말을 남긴 박창진.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그의 정신 반만 닮아도 사람이 사람을 천대시하는 근대적 사고에 전복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인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간화의 키워드는 '정신문화'다. 정신문화의 요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다. 이는 노무현 정신이기도 하다. 

/심보통201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