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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요리‬ 강권하는 사회: 밥과 글

*사진= 내가 만든 볶음밥.


‪#‎요리‬ 강권하는 사회: 밥과 글
밥은 글이고, 글은 밥이다. 밥(요리)하기의 원리와 글쓰기의 그것은 같다. 문제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밥 잘 할 확률과 밥 잘하는 사람이 글 잘 쓸 확률은 등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해 보면 전자가 훨씬 높게 나타날 것이다. 왜 그런가.


요즘 티브이는 온통 남자 밥하기 프로그램으로 그득하다.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에게 '밥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밥 짓기를 넘어선 '요리한다는 것'의 깡총형이다. 요리는 다양한 가짓수의 반영이다. 이 요리는 조선시대를 기점으로 해도 600년 넘게 여성 고유의 영역이었다.
조선시대 여인의 삶이란 참으로 비참한 거였다. 열일곱이 결혼의 마지노선이었다. 이 나이를 넘어가면 인간쓰레기로 취급받았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서 다름 아닌 시어머니의 종노릇을 해야 했다. 그렇게 기혼여성의 일생은 다음 대를 잇기 전까지 한 여성의 노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당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걸 시집살이라고 했다. 시집을 가면 부엌데기가 삶의 반이요, 아들 낳는 게 또 다른 반이었다. 
시댁식구를 먹여 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과 아들 낳는 데 성공하는 것의 경중은 오십보백보겠지만, 둘 다 여자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어느 것 하나 이루고, 행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더욱더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질 질뿐이었다. 모두가 유교질서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6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 요리를 강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강권은 '국가가 행사하는 강력한 권력 작용(强權)'이란 뜻도 있고 '내키지 아니한 것을 억지로 권한다(强勸)'는 뜻도 있다. 
작금의 요리 권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치밀한 국가의 전략인지, 단순한 미디어의 농간인지 속속들이 알 수 없으나, 강짜로 남성에게 요리하기를 권하는 건 아니 될 일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체 누가 남성의 요리를 강제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누가는 '무서운 마눌님'과 '사랑을 빙자하는 여친'이라고 적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드러나지 않는 괴로운 남성들과 그 탓에 덩달아 괴로워 할 여성들을 염려한다.


다시 글 잘 쓰는 사람이 밥 잘 할 확률과 밥 잘하는 사람이 글 잘 쓸 확률의 등치 문제를 곱씹어보자.
당장에 요리하기는 습관의 문제와 연마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건 수백 년 간 여성의 습관과 연마의 문제였지, 남성의 그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에 요리하기는 촉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대단히 정확한 분석이다. 요리에 능한 이들은 대개가 촉이 좋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촉이 좋다. 더 나아가면 예술인들은 거개가 촉이 좋고, 요리를 잘 할 확률이 높다. 
결과적으로 요리 강권하는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즐길 수 있는 건 직업적으로는 예술인들이고, 일부 촉이 좋은 남성들로 국한된다. 그 외에는 편차는 있겠지만 다들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것이다. 600년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순 없다.
그러면 글 잘 쓰는 사람이 밥 잘 할 확률이 밥 잘하는 사람이 글 잘 쓸 확률보다 왜 높다고 보는가. 그건 기획력에 있다. 기획의 요체는 촉이다. 부연하면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것보다 소설가가 시를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시나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능이라고 불리는 촉의 문제지만, 두 장르만 놓고 본다면 그 요체는 시이기 때문이다. 시작詩作이 안 되면 소설을 쓸 수 없다. 그러니 소설가는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능히 가능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이 소설을 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시인이 요리를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서 기획력의 문제가 대두된다. 소설은 호흡이 짧기도(단편) 하고, 길기도(중장편) 하지만 설계를 해야 한다. 설계는 밥하기 즉, 요리하기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작가의 뇌리 속엔 늘 맴돈다. 
글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리하는 사람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깊이와 넓이는 좀 다르다. 요리는 해온 대로가 가능하지만, 글은 단순히 습관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매번 다른 영감으로 써야 한다. 근저에는 촉이 깔려 있다.


나는 우리 시대 예비 신부들에게 그리고 아이를 둔 부모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진정 귀하의 자녀가 한 여자의 남자로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글쓰기 공부를 심도 있게 시키라고. 
나는 또 우리 시대 요리를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남성들과 요리를 요구해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한 두 번은 시도해 보되, 안 되는 거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재주가 다 달라, 안 되는 거 노력할 시간에 잘 할 수 있는 걸 심도 있게 연마하고 즐기라고. 
'딴따라' 박진영은 말한다. "가수는 유브 갓 오얼 낫-You've got (talent) or not.- 둘 뿐이에요. 연예계는 소질이 없는데 오래 있으면 상처만 가질 뿐이죠. 그러니 가수가 되고 싶은데 소질이 없으면 변호사가 돼 가수 옆에서 변호사를 하든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아요."(2012년 7월 12일 삼청동 인터뷰에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자고 선보인 요리 프로그램들이 뭇 남성들에게 상처만 주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요리를 제법 한다. 나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보통사람이다.
/2015.5.29 심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