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 거리에는(심보통 1979~)
대구 남구의 고압선 거리에
무시무시한 삼발이 송전탑이
걷히고,
홀쪽한 전봇대들이
둔탁한 검정 전선을 머리통에
휘두르고,
이쪽과 저쪽으로
휘영청 뻗은 건 30년 전의 일이다.
그전엔 삼발이 송전탑이
어둠의 점령군처럼,
거리의 이 집과 저 집에
한 발 혹은 두 발을
아니,
몸뚱아리 전체를
빼째라는 기세로 들여놓았다.
밤이 되면 판잣집이 있던
삼발이 송전탑 거리는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 밤,
노동을 끝낸
팔뚝 검붉은 남정네들은
나무틀에 낀 희뿌연 창 너머로
파리하게 떨리는 60촉 백열등
막걸리집을,
쉬이 지나치지 못했다.
그곳에서,
찌그러진 금빛주전자에
주인장이 내어준 깍두기 한 그릇
그리고 일그러진 군상들마냥
인상 구긴 금빛 알루미늄잔에
누런 막걸리를,
흘린 땀만큼 콸콸콸 쏟아부었다.
대구 남구의 고압선 거리에는
이제,
그 박달나무빛 남정네들이
쪼글쪼글해져, 백발이 성성해져
밤이면 옛 추억을 더듬으러 모여든다.
막걸리집 아지매는
성가시다는 듯이,
불로막걸리 한 병과
안주 서너 가지를 상 위에
툭, 놓고 돌아선다.
행주를 들고 동그란 은빛 탁자를
빡빡 문지른다.
박복한 팔자를 지워버리고 말겠다는 듯이.
/2013년 5월 22일 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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