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대기업보다 나은 다방업계 창조경제

@지난 10일 경북 청도 출장길에 동행한 선생님의 권유로 마신 다방 커피. 그곳에서 다방 애호가인 선생님으로부터 '다방업계 창조경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경북 안동의 다방업계 사례를 중심으로 다방 혁신 사례를 소상히 들려주셨다. 


#대기업보다 나은 다방업계 창조경제

세상은 진화한다. 진화의 체감도는 의식주에서 제일 높다. 옷은 적삼-비단옷-양복으로 진화했다. 음식은 그저 땟거리만 해결해도 감사하던 때가 있었다. 1960년대 보릿고개 시절이다. 그 시절 아침 인사는 "진지는 잡수셨습니까?" 혹은 "밤새 평안하셨습니까?"였다. 1968년 획기적으로 쌀 생산량(통일벼의 보급으로)이 늘면서 배고픔을 덜 수 있었다. 그래도 먹거리는 오늘날처럼 흔해 빠진 건 아니었다. 대도시에 가면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집은 비만 오면 방이 한강이 되는 남루한 초가에서 비 새는 것만도 축복이라 생각했던 슬레이트지붕집, 그리고 영구적인 양철집을 거쳐 오늘날의 양옥집, 아파트 등으로 진화했다. 이 모든 일이 외형적으로 6.25 전쟁이 휴전된 지 불과 45년 만에 이루어졌다.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가 위기를 거쳤지만, 보릿고개 시절보다는 혹독하지 않았다.

 

진화는 디테일하게 감지된다. 우리나라에서 서양 커피가 상권 골목까지 점령하며 하나의 문화가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오늘날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전신은 '다방 커피'라 해도 될까. 이견이 있을 것 같다. 그러니만큼 커피의 진화는 두 갈래로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다방. 아메리카노를 대표 상품으로 내 건 프랜차이즈 커피점은 몇 년새 빠른 진화를 거듭해 왔다. 커피를 기계에서 뽑아내는 것은 물론, 로스팅을 직접하고 원두도 현지로부터 직접 공수해 오는 커피숍이 흔해졌다. 판매하는 커피종류도 다양해졌고, 그에 따른 디저트 음식도 천차만별이 됐다. 이제 커피숍하면 우리는 다방 커피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럼 다방 커피는 죽었을까. 아니 '다방 커피'를 생산하는 다방은 죽었을까. 그렇지 않다. 현대화된 커피숍만큼이나 옛 커피전문점 '다방'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방의 진화를 들여다 보면 놀랍다. 다방의 진화야 말로 '혁.신.적.'이다. 다방 주인과 다방 아가씨들의 불공정 거래는 암울했던 과거의 얘기로 '다방 역사'에서나 볼 법한 구문이 됐다. 오늘날 다방 주인과 다방 아가씨는 쿨하다. 영업수익을 정확히 5:5로 나눠갖는다. 주인과 아가씨는 '갑과 을' 관계가 아니다. 최근 연이은 대기업의 '갑 횡포'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기업 현장에선 '을'이란 표현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으로 전면교체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다방업계는 이 같은 나쁜 관행을 일찍이 깨뜨리고 상생적 파트너십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 10일 경북 청도군청 아랫길에 자리잡은 상가거리에는 제법 많은 수의 다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간 곳에서 다방 주인은 수박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대중의 머리 속에 박힌 커피숍이 손님을 끌어들여 커피를 파는 식이라면, 고전 커피전문점은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모토로 하고 있다. '커피 배달'이란 옛 시스템은 버리지 않았으나, 배달의 방법에 획기적인 혁신을 가했다. 사장의 단골 및 일반손님 확보 능력에 따라 아가씨를 고용한다. ▶ 하지만 아가씨들이 과거처럼 다방에 상주하지 않는다. ▶사장은 차와 기사를 둔다. ▶ 그 차안에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도구를 싣고 다닌다. ▶손님이 다방으로 주문하면, 사장은 운전기사에게 전달한다. ▶운전기사는 내비게이션으로 주문자의 주소를 찍어 출동(?)한다. ▶아가씨는 목적지에 도착해 주문 커피를 마련해 배달을 완료한다. ▶배달은 6,000원이 기본이다. 이렇게 하면 커피가 3잔까지 제공된다.


아가씨들은 추레하고 어두컴컴한 다방에서 시간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배달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활동이 자유롭다. 다방 시장이 사양 길로 접어들자, 업주들은 아가씨들을 먹이고 재워가며 영업할 엄두를 못 내게 되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곧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처세술의 묘요, 경영의 묘가 발동한 것이다. 재기에 능한 업주들이 이 런 신(新)경영법을 고안해 냈다. 물론 요즘 대세는 프랜차이즈식 커피숍인 걸 거스를 순 없다. 하지만 다방 커피만의 틈새 시장은 '블루오션'이 된 듯하다. 


지난 10일, 청도로 출장을 갔다가 동행한 선생님 한 분이 "나는 출장 나오면 다방을 갑니다"라며 "차를 마실 것 같으면 다방을 가자"고 제안했다. 다방. 그건 우리들 머릿 속에서 잊혀졌던 장소이고, 추억의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청도군청 골목에 '다방'이라고 적힌 간판을 찾으니 생각보다 많은 수의 다방이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놀랐다. 다방은 우리 인식 속에서는 아스라이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우리 곁에 건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단한 혁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최첨단 GPS' '이동차' '5:5' 같은 단어가 다방업계에서 유영(遊泳)한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이런 게 바로 창조경제 아니겠는가. 가뜩이나 거대 기업의 '갑 횡포' 논란으로 사회가 시끌벅적한 터여서 '대기업보다 나은 다방업계 창조경제'라는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