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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시] 은행나무(심보통 1979~)

#은행나무(심보통 1979~)


김천 평화동 평화시장 앞
은행나무는 뽀얀 속살을
거북이 등껍질 같은 옷으로 두르고 섰다.

은행나무는 십수개 팔을 갖고 있는데
봄꽃 지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
팔에서 여리디여린 녹색손이 돋아난다.

우리 몸의 털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의기양양하게 씩씩하게 자라나듯
은행나무 손은 몸통에서 뿌리내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곧 녹색장갑을 끼었다가
한여름에는 더 진한 장갑을 끼고
가을에는 노란장갑으로 바꿔 낀다.

겨울이 오면 장갑을 툭툭 벗어던지고
거북이 등껍질 같은 외투만 걸치고 
고독하게 쓸쓸하게 비장하게 겨울을 난다.

은행나무는 이듬해 봄이 와야
또 다시 장갑을 낀다.

알랑가 모르겠지만,
비움으로써 채우는 미덕을
은행나무는 평화시장 손님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2013년 5월 9일 아버지 링거 맞으시던 날, 강외과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