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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희망칼럼13] 잘 산다는 것, 그것

#잘 산다는 것, 그것

너무나도 열정적이었던 직장 선배님이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고 저간의 사정을 전화로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도 '아직 할 일 많아'를 외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올 하반기는 몸을 추스리겠다고 했다. 나는 선배의 말을 듣고, 잘 산다는 게 무엇일까 떠올렸고, 선배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주었다. 일독하는 분들도 가만히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본부장님께

본부장님,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니깐 한 번 읽어봐 주십시오. 

이건 제 경험칙에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열정적이고, 말이 많은 사람은 대개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이건희 회장도 그 큰 회사를 경영하려니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할 수밖에 없겠지요. 

제 부친께서도 생전에 대단히 다혈질적이고, 배우려는 열정이 매사 넘친 분이셨죠. 역시 심장이 좋지 않아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기자를 관둔 이유 중 하나도 템퍼 조절에 실패해서였습니다. 

기자 5년 2개월 하면서 제가 읽은 책은 10권도 안 됩니다. 도무지 책이 읽히지 않았지요. 그리고 현기증이 곧잘 일었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식은땀도 간혹 났습니다. 5년 2개월 간 두 번의 무기력증을 2~3개월간 겪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홍삼을 먹고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같은 증상을 겪고 나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무기력증의 실체는 ‘니 몸 혹사 좀 작작하라’는 제 몸의 최후 반응이라는 것을요.

3달 동안 말도 줄이고, 술도 줄이고, 그럭저럭 지내다보니 몸에 힘이 불껏 솟는 순간이 왔습니다.

31~32살 현장을 한참 뛸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서 대단히 곤혹스럽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제 몸이 참 이해가 안 갔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책도 잘 읽히고, 어지럼증도 사라졌습니다. 

퇴사를 하고 1달 만에 제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또 한 번 무기력증을 겪었습니다. 이번에는 1년이 갔습니다. 운동으로 단련하면서 재기했습니다.

이제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면서 제 일에만 집중합니다.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넌 도대체 회사에서 몇 가지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그러다 쓰러진다고. 그때마다 ‘에이, 선배 전 아직 젊잖아요.’-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것과 몸이 축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본부장님을 비롯해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제 내공쌓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부장님을 보면서 위태로웠습니다. 저러다 몸이 축날 텐데. 말씀이 많으면 심장이 안 좋을 텐데. 눈자위를 보아하니 간도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그런데 열정을 보니, 참 기자스럽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본부장님, 카르페다임도 좋고, 돈 버는 것도 좋고, 일도 좋은데,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잘 해내도 나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젊은 놈이 너무 할아버지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호기로운 기자로 3,000명 넘게 만나면서 세상살이를 제 깜냥대로 보았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것 아닐까요.

내가 본부장님 연세가 되어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지만, 20대 충분히 겁 없이 살아봐서 한편으로는 ‘저건 아닌데’도 싶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부장님과 저는 아비투스가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아비투스를 이야기할 때 프랑스 역사학자 브로델이 한 말을 들려줍니다.

“나는 제자를 받을 때, 고향을 물어봐서 농촌 출신에게는 농업사를 권하고, 도시 출신이면 상업사와 같은 주제를 권했다. 누구든 자신이 성장하며 갖게 된 원초적 정서와 맞는 공부를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로델은 대단한 통찰력을 가졌다고 저는 봅니다.

촌놈은 촌놈답게 좀 무디게, 도시놈은 도시놈답게 좀 약빠르게 살아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본부장님,

시인 함민복은 우리 몸은 ‘붓’ 인생길은 ‘유서’라고 했습니다. 

본부장님은 어떤 유서를 남기고 가고 싶으신지요.

우리 약속, 돈 벌어 빌딩 사서 직원 봉급 해결하고, 최고의 회사를 운영해 보자는 그 약속, 지키시려면 생활패턴을 패러다임쉬프트하셔야 합니다.

말 수를 줄이시고,

유산소(걷기)운동을 열심히 하시고,

여유를 가지셔야만,

마지막 소풍 끝내는 날, 

붓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부장님, Carpe dime! and good luck!


2014.6.23

동지(同志) 심지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