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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경험칙‬

‪#‎경험칙‬
조선시대에 가뭄과 역병은 연례행사였다. 조선 백성들은 가뭄에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역병에는 나름대로 영민하게 대처했다. 역병이 돌아 감염되면 환자들은 인적이 드문 언덕배기로 자진해서 거주지를 옮겨 토담집을 짓고 생활했다. 옮겨갈 사정이 되지 않는 사람은 대문에 일정 표시를 해 멀쩡한 사람들에게 가급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아마도 경험칙에 따른 조치였을 것이다. 
'사람 잡는 중동 독감 메르스'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환자들이 거쳐갔던 공공장소는 여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모양이다. 어제 대구를 갔다가 지나는 길에 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 가게에 들렀다. 제법 유명 맛집으로 알려진 이 가게는 절간 같았다. 주인장의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좀 민망하고 송구했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발생한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곳 중 한 곳인데, 대구시장이 해당 환자의 동선을 공개하자, 식당은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혹시 모를 추가환자 발생을 우려한 조치였다. 식당은 지난달 15일부터 일주일을 쉬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언론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식당을 찍어갔다. 그래도 대다수 매체는 주인장의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상호는 모자이크를 처리하고, 식당에 피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언약을 해주었고 그대로 지켰다.(그래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런데 단 한 곳(뉴스 전문채널)이 주인장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식당 건너에서 카메라로 식당 전면을 몰래 찍고, 줌으로 주방의 간장 그릇까지 찍어 전국으로 버젓이 내보냈다고 한다. 우연히 주인장이 뉴스를 보고 이 언론사에 항의를 했고 해당 언론사는 "알아보고 전화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단다. 
이 식당은 지난달 21일 이후 일반손님이 뚝 끊겼단다. 대구시와 남구청의 권고로 공무원과 관변단체 회식을 돌아가면서 피해식당에서 하고 있단다. 이날도 이 동네 자율방범대원 30명이 저녁을 예약했다.
저녁답에 다른 분이 전하는 소식을 들으니, 건강을 회복한 공무원은 우울증에 걸려 영 사람구실 못하게 됐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 집을 찾아 돌멩이를 던지고 당장 이사 가라고 난동울 부렸단다.
우리는 현재의 관점으로 조선시대를 여러모로 미개했다고 보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사회라도 경험칙은 넘어서지 못한다. 
메르스 사태는 영민한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주었겠지만, 그 교훈은 누군가의 고통과 실패로 가능하였음을 깊이 새기는 것이 진정한 문명인이겠다.
최근 영국에서는 경찰이 한 꼬마를 수소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꼬마가 박물관에서 큰 유리창문을 깨뜨리고 사라졌기 때문인데, 경찰이 꼬마를 찾는 이유에 대해 묻자 경찰당국은 이런 대답을 내놨다고 한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만나서 달래주려고요."
지금 멀쩡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국경찰의 심정으로 보듬는 것 아닐까. 건강을 회복한 이웃에게는 격려전화로, 타격 입은 이웃에게는 팔아주기로.
/심보통 201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