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과 기억
프리드리히 니체와 모리스 알박스 그리고 피에르 노라는 역사와 기억이 몇 가지 점에서 명확히 이질적인 것이라고 단정한다.
니체는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라는 그의 초기 저술에서 삶에 필요한 기억과 삶과 거리가 먼 역사를 대립시키고 있다.
알박스는 "역사는 인류의 보편적 기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보편적 기억이란 없다."며 역사와 기억은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노라는 "기억은 항상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이며 영원한 현재에서 체험한 구속력이지만, 역사는 과거의 재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니체, 알박스, 노라의 반대편에는 댄 다이너(기억연구 잡지인 <역사와 기억> 편집장)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역사와 기억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다이너는 당파성, 정체성으로부터 일절 도움을 받지 않는 역사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합당하다고 믿고 있다.
이 양 극단의 사이에 알라이다 아스만이 존재한다. 아스만은 역사와 기억을 상호 간에 배제하지도 않고 억압하지도 않아야 할 기억의 두 가지 양태로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아스만은 니체 등이 말한 역사를 비활성적 기억으로, 기억을 활성적 기억으로 분류한 뒤, 다시 활성적 기억은 집단 관련성, 선택, 관련 가치, 목적의식 등과 관련해 늘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기능기억'으로 명명하고, 비활성적 기억은 이차적 질서의 기억 즉,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을 기록한 기억들의 기억이란 점에서 '저장기억'이라고 명명하였다.
그가 기능기억과 저장기억을 기억의 두 가지 양태로 규정한 까닭은 저장기억이 다시 기능기억과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치료이론을 통해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리치료이론에서는 개인의 기억이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그 중 첫번째 영역이 '의식적 기억'이다. 의식적 기억의 특성은 기억과 경험이 하나의 특정한 의미를 구성하는 동안 그것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라. 어떤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앞선 경험으로 인한 기억을 떠올린다.
나의 경우 신문사에서 선배들과 이견차로 말싸움을 하고, 속으로 "아,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치사한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당장에 사표를 쓸 생각을 몇 번이나 하였다.
그러다 대학 4학년 때 기숙사에서 사감과 싸우고 짐을 싸들고 무작정 기숙사를 떠나왔던 일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시 내가 잘못한 것보다 사감과 조교가 잘못했지만,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가진 권력(?)으로 나를 억압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 더러워서 같이 생활 못해 먹겠네."하고 새벽에 짐을 싸서 기숙사를 나와버렸다.
그 일이 있고,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가 졌다. 두 번 다시 기숙사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 기숙사가 구조적으로 문제를 있다고 판단했으면, 끝까지 남아서 싸워가며 잘못된 것을 바꿨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뛰쳐나오는 것은 네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 경험으로 신문사 재직시절 선배들과 말싸움을 벌이고 사표 쓸 생각을 몇 번이고 했지만, 옛 기억을 더듬은 뒤 "과연 내가 잘못한 일인가."를 반문해 보았고 '아니다.'는 판단이 서면 "좀 더 생활하면서 조금씩 바꿔나가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렇듯 기억의 구성은 어떤 것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물론 개개인에게 미래에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의식적 기억은 개인의 자기 해석과 자기 규정을 하는 데 용이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심리치료는 분명 기억의 재구성과 전환에 도움을 준다.
이 같은 치료 방법의 전형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개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기억 스토리에는 기능적 기억과 저장 기억이 필요에 따라 합종하고 연횡하게 된다. 사람들이 '활성적으로 체험하는' 인생사는 기억(=역사)과 경험을 어느 한 구조 속에서 연결하는데, 그 구조는 형식적인 자아상으로서 행위의 방향을 제시하고 심지어 삶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 기억 개념을 한정없이 확장시키면 '웃어도 하루가 가고, 울어도 하루가 간다. 세상사 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닿는다.
일상의 용어가 학문으로 풀이되면 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의 핵심을 가르고 나면 도로 우리 곁에서 친숙한 얼굴로 만날 수 있다. 학문이란 결국 우리네 삶에서 맴도는 것이렸다!
*참고문헌: 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pp.175~182>
/심보통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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