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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시인 박노해


#시인 박노해

보라! 이 사람. 해탈(解脫)의 얼굴을 가졌다. 시인 박노해. 그가 많은 것을 내려놓은 '선한 얼굴'을 가진 건 '덤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그래서다. "내가 살아남은 건 87년 서울대 박종철 군이 고문당하다 죽은 덕분"이라고 한 건. 하나 박노해의 '덤 인생'은 구차하거나 비루하지 않다. 그는 그걸 '책무(責務)'로 전환했다. 살아남은 자의 책무. 그의 다짐에선 의연함이 읽힌다. 그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연맹(사노맹)의 중추였다. 1991년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말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는 그의 덤 인생을 변경으로 내몰았다. "분단의 섬에, 지극히 통제된 환경에 갇혀 지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시 살아 나가면 전 세계 문제현장을 밟아보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자고, 그때까진 침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만년필과 낡은 수동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변경을 헤맨 이유다. 그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출중하다. 제 삶을 스스로 경영할 줄 안다는 것이 하나고, 여전히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는 것이 둘이다. 마지막 하나는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둘이다. 그가 가진 내면의 슬픔과 자득. 그는 안다. '충만한 삶은 축적이 아닌 소멸에서 온다'는 것을. 삶의 어원은 다름 아닌 '사름'인 것을. 그는 안다. 이런 것은 저절로 알아야 한다(自得)는 것을. 
보라! 이 사람. 슬픈 눈을 가졌다. 사회문화운동가 박노해는 말한다. "가장 힘 센 것은 역시 슬픔인 것 같다. 분쟁지역에 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유서를 새로 쓴다."
그는 이달 5일부터 내달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사진전 '다른 길'을 연다. 그가 책무로 찾아온 대안을 우리는 목도할 의무가 있다. 가서, 보자. 
/작가 심보통 2014.2.6

*참고=중앙일보 2014.2.5, 8면
**사진=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