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김광석은 좋아할까
새해 들어 김광석 열풍이 만만찮은 모양이다. 김광석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이 내리 세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대구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길은 전국의 인파로 들썩인다는 소식이다. 그에 따른 다양한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김광석의 목소리가 어떠 어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둥, 우리 시대가 그의 노래를 원하는다는 둥 문화평론가 뿐 아니라 기사를 양산해 내는 기자들까지 합세해 저마다 그럴 듯한 '썰'을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경사(慶事)에는 박해도, 조사(弔辭)에는 후한 우리네 정서법으로 조망해 보면, 올해가 김광석이 태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라는 게 포인트 같다. 나머지 평가와 분석은 이 사실로 빚어내고 빚어진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김광석 탄생 50주년으로 호재를 만나 쾌재를 부르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대구일 것이다. 대구, 대구, 대구. 대구가 하나의 '관광콘텐츠'로 관(官)과 관변단체 식 숫자몰이가 아닌 말 그대로 순수 외지인을 자발적으로 일거에 불러들인 역사가 20세기 들어 있었을까. 있다면,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원래 방천시장은 '김광석'으로 부흥을 이루려던 곳이 아니다. 방천시장 프로젝트의 골자는 지역예술인들이 낙후된 시장을 새롭게 단장해 다시 떠나간 지역민들을 끌어당기겠다는 데 방점을 두었다.
하나 그 프로젝트는 노고에 비해 효과가 적었다. 지역사회 비판도 만만찮았다. 헛돈 썼다는 성토였다. 거기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절치부심 (切齒腐心)했다. 묘책을 찾아 종으로 가보고, 횡으로도 가봤다. 그 골몰의 한 대목에서 김광석을 추려냈다. 그들은 '불멸의 통기타 가수 김광석' 대신 '대구의 김광석'을 더 크게 그렸다.
다시 지역 예술인들이 나섰다. 맹 방천시장 프로젝트 주역들었다. 김광석을 그리고, 그 길을 김광석 길이라 이름 붙였다. 요즘 그 길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찾아드는 모양이다.
하나 이 대목에서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 방천시장의 김광석이 핵심이어야 하는가. 방천시장과 시장상인들이 핵심이어야 하는가.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장이 선다. 하나 김광석으로 방천시장에 사람이 몰리고, 다시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외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방천시장 프로젝트의 미지근한 성과로 그 사이 적지 않은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그리고 김광석의 방천시장에는 약삭빠른 새 주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김광석이 주(主)고, 방천시장 상인회가 부(附)다. 방천시장 상인회는 김광석에 더부살이하는 격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시장상인들이 김광석을 그리도 사랑했었나. 같은 노래를 매일 반복해 트는 일은 관광객들에게는 식상한 일이겠지만, 상인들에게는 먹고 살자니 참아야하는 '개똥'일수도 있음을 그대들은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게다가 이곳에는 한 판 '전쟁'의 조짐도 보인다. 기존 상인과 새로운 상인 간 이권 다툼. 이건 예고된 전쟁이다. 주객이 전도된 시장 살리기 사업이 낳은 사생아는 머지않아 꼴사나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대구에서 낳 다지만, 대구와는 뾰족한 연고도 없던 김광석을 팔아 지역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것이 외지인의 한 사람인 내 눈에는 그다지 좋아만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을지도 모를 김광석도 그저 고맙고, 감사하게만 여기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조용히 내버려두기를 원할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 속 김광석이라면 말이다. 김광석은 생전에도 세인에게 회자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김광석의 출생지를 두고 입 뚫린 산 자들이 방천시장 부근이니, 대봉동이니, 봉덕동이니 옥신각신인 모양이다. 나는 김광석이 살아생전 자신의 출생지에 의미를 두고 말한 적이 있다는 걸 여적 들어보지 못했다.
가뜩이나 웃지 않으면 우수(憂愁)에 젖은 듯 보여 슬퍼 보이는 김광석이 산 자들의
가당찮은 놀음에 하늘나라에서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그는 '방랑가수'를 천직으로 알고 살다,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20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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