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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글비, 나를 울려주는 글비


#글비, 나를 울려주는 글비
드디어 9부 능선을 넘었다! <변경의 동학-상주동학 이야기> 7편 중 6편 원고를 탈고해 번역하는 어학원에 넘겨주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내가 많이 강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보람을 느낀다. 연재되는 한 달 동안 책 1권을 썼다고 보면 된다.
이따끔 티브이를 보면 한 달에 한 권씩 책 내는 작가가 소개되곤 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니 소개되는 것이다. 
헌데 꼭 자랑할 것만은 못 된다. 
한 달에 한 권씩 책 내는 건 대단한 탈렌트이긴 하나, 그 방식이 지속된다면 그건 아티스트가 아니라 테크니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독이 된다.
글쟁이는 아티스트다. 
아티스트는 사방 심벽(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려야 클 수 있다. 자유분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고충을 겪는다.
한 권의 책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소위 '글빨'이 좋을 때, 작가는 단번에 전체 분량의 반을 써낼 수 있다. 
그건 단순히 글빨로 설명될 수 없는 묘한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글비'라고 한다. 여성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내려온다는 지름신과 비슷하다.
주체 못 할 그 무엇이 글 흐름을 지속시킨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산술적으로 전체 분량의  1/2을 썼다손 치자, 그럼 다음날 바로 나머지 반을 매조질 수 있을까.
절대 그런 일은 없다. 글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체 작업기간이 1년이라면 반을 초장에 끝냈어도, 마무리짓는 시간은 매 같다. 
그게 묘한 이치다.
<변경의 동학...>은 동학경전과 가사를 이야기한 5편이 가장 소화하기 힘들었다. 경전은 한문이고, 가사는 한글이라고 하지만 18세기 한글이다. 오롯한 이해는 쉽지 않다. 해제본을 참고할 수밖에 없지만, 누가 해제를 했느냐에 따라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 가장 고심해가며 쓴 글이다.
나머지 6, 7편은 쉽겠거니 했다. 
근데 6편 <상주동학 삼대 이야기>에서 미로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도무지 글머리가 열리지 않는 거였다.  
이러면 미친다. 그러나 선경험이 있어 열쇠는 알고 있다.
무심히 뇌를 놀려주는 것이다.
글쟁이들은 잘 먹고 잘 놀아야 한다.
머릿 속이 복잡하면, 절대 글비가 내려주지 않는다.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되면 글은 괴발개발이 된다.
근 일주일을 컨디션 조절하고 좀전에 겨우 탈고해 어학원으로 넘겼다.
9부 능선은 생각보다 힘들게 넘었다. 
우리네 삶에서 고점 찍기는 언제나 녹록지 않다.
/2014.11.16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