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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제1회 이몽룡 마을문화제에 부쳐


#제1회 이몽룡 마을문화제에 부쳐
 지난 26일 경북 봉화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고전소설 <춘향전>의 남자주인공 이몽룡을 활용한 마을축제가 열렸다. 정식 명칭은 '제1회 이몽룡 계서 성이성 마을문화제'. 
 축제 이름이 길고도 난해하다. 이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춘향전은 '소설(허구)'로 작자는 '미상'으로 배웠다. 
 그런데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인물이 경북 봉화 출신의 청백리 계서 성이성(1595~1664)이란 분이고, 작자도 조경남(1570~1641)이란 분이다'는 학설이 국문학계에서는 10년 전부터 있어 왔다. 
 이런 주장을 펼친 분은 설성경 연세대 명예교수(70)이다. 설 교수는 우리나라 '춘향전 1호 박사'로, 30년을 춘향전 연구에만 몰두했다. 
 사실 이 축제는 설 교수의 집념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공허했을 것이다. 
 이날 문화제 개막에 앞서 봉화에서는 관련 행사 2개가 더 열렸다. 
 <이몽룡 실존인물 성이성을 활용한 지역 문화산업 활성화 방안 세미나>와 <청백리 계서 성이성 유물 특별전시회>. 
 이날 행사를 사실상 총괄 지휘한 경북도는 유물전시와 마을축제에 비중을 두었지만, 현장에서는 세미나 중심의 행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각계 전문가의 합의체 결과로 진행된 전시회와 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북도의 입장과 봉화군의 입장이 달랐고, 성이성 선생 후손의 입장이 달랐다. 그런 중에 토론자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냈다. 현장에서 느끼는 이견 차는 생각보다 컸다. 일단 테이프는 끊었는데, 내년에도 마을축제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날 세미나의 압권은 이형호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국장의 갈무리였다.
 "선점과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성이성이 이몽룡과 실존인물이다, 아니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설이 뒷받침하고 있고, 대중은 이몽룡 축제를 여는 고장을 이몽룡의 고장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몽룡이 청백리 성이성 선생과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봉화를 '청백리의 산실'이라고 마케팅해야 합니다. 그럼 조선시대 청백리가 217명이나 되는데 왜 하필 봉화가 청백리의 고장이냐. 그건 마케팅입니다. 누가 먼저 선점해서 마케팅을 잘 하느냐, 문화관광산업은 그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형호 국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뜨악했다. 우리나라 고위공무원의 의식이 저것밖에 안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선점과 마케팅이면 끝이다'는 이 국장의 말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결과중심주의, 성과중심주의이다. 
 그래서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세미나가 끝나고, 마을축제 장소로 이동해서 축제현장을 둘러보면서 이 국장은 왜 선점과 마케팅을 강조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우리 국민의 현재 문화수준이 선점과 마케팅에 만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나는 현장에서 이 행사들을 기사화하지 못했다. 대신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기성 언론틀에서 다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렇다고 이 현장을 묵시할 수는 없었다.
 진작부터 유명상 한국일보 대경본부장은 내게 엠플러스에 스토리텔링 칼럼을 써 줄 것을 주문했었다. 칼럼으로는 풀 수 있겠다 싶었다. 내친김에 10월호부터 <스토리 오브 스토리텔링>를 신설했다. 마수로 '제1회 이몽룡 마을문화제'에 관한 소고(小考)'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초고를 본 김윤곤 편집장은 썩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다. 그는 언론인의 틀로 칼럼을 보고, 나는 문화에디터의 틀로 칼럼을 썼기 때문이다. 뭐가 다르냐. 언론은 비판적 틀에서 사안을 보려하고, 문화에디터는 문화의 틀로 사안을 보려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국장의 생각이 옳으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그건 언론의 틀이지, 결단코 문화계 현실의 틀은 아니다. 문화는 언론의 틀로 보면 절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화는 고상한 것도, 더티한 것도 아니다. 문화는 그저 문화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면 선점도, 마케팅 우선주의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선점은 행정의 테크닉 측면이고, 마케팅은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하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영역이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2014.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