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적 관점
아침에 아내 될 사람(이하 아내)과 화제의 드라마 '미생'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 송현우 화백께서 일찍이 일독을 권하던 만화를 동명의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하나 만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직장생활의 우환을 다룬 드라마라니 더더욱 관심이 없는지라 나에게는 미화제의 드라마였다.
어쩌다 아내가 열혈시청하고 있으면 지나가다 잠시 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 아내가 드라마 스토리를 이야기했더라면 할 말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핵심이 '미생을 보면서 실제 직장인들이 느끼는 바가 지위의 고하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자기네 국장은 극 중 저렇게 성실한 후배가 우리 조직에는 왜 없을까를 생각하고, 자기와 비슷한 직급의 후배들은 저렇게 멋진 상사를 만나면 좋겠다'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국장도 그러시고, 나도 국장의 말씀에 동의한다"며 "직장생활하는 데는 많이 배운 것보다 센스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내에게 대화를 가장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렇지. 센스 중요하지. 그런데 요즘 신입사원들은 우리 때보다 센스가 없지 않아."
(아내) "동의."
"그렇다고 센스 있는 신입사원이 훌륭하다고 말하면 안 돼. 꼭 훌륭한 것도 아니고. 요즘 신입사원들은 똑똑해. 아마 걔네들 저수지에 빠뜨리면 입은 끝까지 살아 있을 걸. 2000년대 초반, 우리가 직장 초년병일 때는 순진해서 고문관이 된 동료들이 더러 있었어. 그런데 요즘은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 그게 좋은 현상만은 아니야. 나도 최근에 우리 회사 인턴들을 보고 참 일 잘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번에 일 때문에 회사를 내려가서 그들을 다시 보니깐, 달리 보이더라고. 슈퍼루키 같은 느낌이 안 들어. 직장생활 1년도 안 해 본 친구들이 다들 어설픈 프로 흉내를 내. 루키는 신선한 사람이지. 한 마디로 방금 깐 콩알 같은 느낌. 그 콩알은 어디로 튈 지 몰라야 정상이야. 조직이 새 사람을 뽑는 이유는 단순히 인원충원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조직에 새 피를 수혈하고, 탄력있게 운영하기 위해서지. 루키들의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 그걸 조직운영에 반영하는 거야. 그런데 루키는 말 그대로 루키지. 미천한 경험, 얕은 시각. 그래서 루키는 실수 연말이고, 때론 오만하기까지 해. 그게 온전히 루키야. 근데 요즘 루키는 어때? 센스가 뛰어난 나머지 노회하다는 느낌을 줘. 그런 그들에게 진정성이란 게 얼마나 될까. 조직을 사랑하는 진짜 마음, 일을 하고자 하는 진짜 마음. 그런 것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게 보이지."
내가 하나 물었다.
"자기, 우리가 내공, 내공하는 데 내공이 뭐야?"
(아내) "내 안의 힘?"
"내공은 위기, 시련을 대범하게 능수능란하게 넘는 힘이야. 반면 외공은 뭘까."
(아내) ??
"이건 국어사전 어디에도 안 나와 있어. 외공은 신변잡기의 힘이야."
내가 뜬금없이 내공과 외공을 이야기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외공을 내공으로 착각하고 살아. 나는 그게 우리사회 현주소라고 생각해. 어떤 사람을 만나면 누구는 진짜 내공이 강해라고 말하지. 그때 내공은 대부분 외공을 뜻해. 대체로 아는 게 많은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을 두고 내공이 강하다고 하지.
직장생활도 똑같애. 센스가 좋은 사람을 '그 연차에 비해 내공이 세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만 그건 온당치 못한 표현이야.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연륜과 경륜을 족히 20년은 앞서 살아. 인터넷에서 잡다한 것을 배우지. 하물며 대학생들이 어른들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우리 때와 같겠어?"
내 결론은 이런 거다.
루키는 루키다움의 발칙함과 당돌함이 있어야 한다. 벌써부터 처세술에 능통하면 그건 자칫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고착화 될 확률이 높다. 융통성이 좀 없는 것과, 당돌하고 오만한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스스로 깨칠 여지가 높다. 하나 스스로를 낮추는 듯,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전략적 행동은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이다. 사람은 언제고 어느 때고 진심으로 움직여야 뒤의 우환이 적다. 인간의 좋고싫음은 제 각각이지만, 옳고그름은 한 가지다.
/심보통201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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