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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새해, 새마음운동을 하자

#. 1960년대 대한민국의 파워엘리트Power Elite는 육사 등 군부에 포진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군부는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선진 미국 병영문화와 운영체계를 전수받아 온다. 이것을 밑천 삼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우리나라 행정, 법조, 학계, 언론 등 어느 것 하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36년 치욕의 일제 잔재殘滓가 주홍글씨처럼 아로새겨져 사회 곳곳에 만연할 때, 우리 파워엘리트는 그 치욕의 역사를 '우방 미국'이란 지우개로 빡빡 문질러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국의 병영문화와 운영체계를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채워 넣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조직의 비슷비슷한 문서양식은 미군美軍의 보고報告
 문화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 선진 미군 문화를 배우고 우리나라에 삽입하는 대수술을 주도한 군인들은 시나브로 저마다 가슴에 '애국愛國'이란 장미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애지중지하며 마침내 '애국이란 장미'를 피웠다. 그리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그 애국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내 조국을 살렸다는 자부심, 살려야 한다는 자존심'은 국민 누구보다 그들의 의식을 강하게 짓눌렀고, 절박하게 지배했다. 

#.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근간이 된 자유당 그리고 그 반대편의 민주당과 중간자적 혹은 변방의 위치에 머물렀던 무소속 의원들도 애국을 가슴에 아로새기긴 마찬가지였다. 부유했던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토지와 세간을 팔아 민초를 돌보는 선행을 솔선率先하고 수범垂範했다.
부정이 고착화된 건 아직 민주화가 설익은 밥처럼 찝찝하고 편치 않은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와중에 '이념의 강江' 이쪽과 저쪽이 겉잡을 수 없이 넓어져만 갔기 때문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급기야 이범석李範奭이 이끄는 족청계族靑系(조선민족청년단 계통)를 축출하고, 애오라지 민주 정부를 세팅하려 한다. 일면 꼼수가 발휘되고, 불법이 자행됐다. 한번 통용된 꼼수와 불법은 우리나라 얄궂은 정치 풍토로 자리매김 한다. 성난 민심은 그렇게 들불처럼 번져갔다. 4.19, 그건 의식있는 민초들의 몸부림이었다.

#. 군부는 그 모습을 똑똑히 목도目睹했다. 박정희와 그 휘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전복하기 이른다. 그리고 애국의 장미를 그들의 방식대로 만개滿開한다. 1970년대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단행한다. 게으르고 나태한 습習을 걷어치우고, '우리도 잘 살아보세'란 구호로 대한민국 전 국토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건 일면 강압적이었고, 때론 비합리적이었다. 하나 제 때 물을 주지 않아 풀죽어 있던 국민들 가슴 속 장미는 제 마을을 스스로 단장하며 활들짝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전국 방방곡곡에 내 나라 영토엔 찬가讚歌 '잘 살아보세'로 뒤덮인다. 새마을운동 3대 정신인 근면勤勉, 자조自助, 협동協同은 의도해서도 퍼져갔고, 국민 스스로 만들어도 갔다. 그건 받고 실천하면 좋은 일종의 행복바이러스였다.

#. 마을로 향하는 길목이 새단장되고, 비가 새도 내버려뒀던 지붕은 개량됐다. 너저분한 흙담을 허물고 깔끔한 시멘트담을 세웠다. 장마철이면 속수무책으로 작살나는 도랑을 넓히고, 제방을 튼튼하게 쌓았다. 저 하기에 따라 동네는 신수身手 훤해진 '서울 간 김복동'이도 됐고 '김말숙'이도 됐다. 그건 혁신innovation이었고, 또 하나의 혁명Revolution이었다. 그 혁명은 도미노처럼 잇따라 일어났다. 농업혁명, 경제혁명, 과학기술혁명, 환경혁명, 복지혁명, 문화혁명, 교육혁명. 70년대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80년 전두환 시대 새마을운동은 그야말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혁명종합선물세트'였다.

#. 새마을운동은 그렇게 전쟁으로 할키고 찢겨진 대한민국을 봉합하고, 재건하는 초석이 됐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의 요체要諦가 새마음운동이었음을 우리는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마음이 없었다면, 새마을운동은 성공했을 리 없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경제규모 10위'란 자랑스러운 여섯 글자는 없다. 

#. 2012년 임진년壬辰年 새 아침이 밝았다. 오늘 대한민국 조직사회는 일제 시무식始務式을 갖는다. 근면勤勉, 자조自助, 협동協同을 슬로건으로 하는 새마음운동을 선포하고 실행에 옮겨 볼 것을 권한다. 누구는 40년 철 지난 구호라고 비아냥될 지 모른다. 하나 이는 인류사의 보편 타당한 구호다. 동서와 고금과 시공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구호란 말이다.

#. 새해 아침부터 새마을운동을 이야기한 이유고, 새마음운동을 주창하는 이유다. 때와 장소에 따라 운동의 알맹이는 변하기 마련이다. 이 또한 인류사의 보편 타당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