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엄마와 홍시


#엄마와 홍시

엄마는 감을 좋아하신다. 홍시, 곶감, 단감, 삭힌감... 감이라면 종류 불문이다. 그 중 홍시를 제일 좋아하신다. 
지난달부터 한달 내내 집 리모델링 중이어서 감나무 아래 임시로 부엌을 만들고 비가림용 천막을 쳐두었다. 9월에만 해도 감은 그저 땡감이었다. 붉게 익은 홍시가 하루가 다르게 주렁주렁 열린 건 일주일 전쯤이었다. 
엄마는 마냥 감을 바라보며 "저 홍시들 올해는 못 먹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그 길로 톱을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감채를 만들기 위해 훤칠하게 잘 빠진 대나무 한 그루를 베러 갔다. 
그런데 어린시절 감채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베던 때와 이번에 벨 때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대나무를 베려니 손이 쉬이 가지 않았다.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자라기 위해 인내하고 감내해야 했을 시간을 생각하니 대나무를 베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대밭에서 주변에 잘려진 것 중 쓸 만한 것을 골라보았지만, 시원찮았다.
예전에 대구 가창에 있는 어느 사찰의 주지스님이 들려준 법문이 떠올랐다.
주지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에 살생 말라는 말이 있지요.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꼭 다 죽이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노모가 염소 한 마리 고아 드시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부처님이 살생 말랬으니 염소를 잡지 않는 것은 부처님 법이 아닙니다. 이 때는 염소를 잡아도 됩니다. 이게 개차법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닫혀 있지 않습니다. 열려 있습니다."
나는 주지스님 말씀대로 엄마가 드시고 싶어하는 감을 따기 위해 대나무를 한 그루 골라 밑동을 잘라 집으로 가져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감채를 만들려면 중요한 것은 철사와 헝겁 조각이었다. 어릴 때 외할매는 손수 철사를 헝겁 조각에 이어 자그마한 자루 모양으로 바느질을 한 뒤 철사를 대나무 상단에 고정시켜 헝겁으로 꽁꽁 묶어 감채를 만들어주셨다. 
형과 나는 그걸로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기도 하고, 마당에 서서 감채를 치켜세워 감을 따기도 했다. 그건 우리 형제의 아주 재미나는 놀이였다. 그 감은 외할매와 엄마에게 '진상'됐다. 형과 나는 감 따는 재미를 느꼈지, 감 먹는 재미는 별로 느꼈지 못했다.
리모델링으로 집 사정이 말이 아니어서 감주머니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철사 대용으로 옷걸이가 떠올렸다. 주머니는 5개 들이 짬뽕라면 봉지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라면봉지를 온전히 벗기고, 옷걸이를 해체한 다음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 라면봉지를 일정하게 몇 번 접어 옷걸이와 합체시켰다. 라면봉지가 미끄럽기 때문에 해체되지 않도록 동그랗게 돌아가며 넓적 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고 대나무 상단 첫 마디를 반으로 쪼개 반쯤 벌린 다음, 그 사이로 곧게 펴 꼰 옷걸이를 끼워넣었다. 옷걸이의 두께가 대나무의 구멍보다 굵었기 때문에 약간 벌어졌다. 그런 상태에서 노끈으로 단단히 감았다. 마지막으로 종이테이프로 노끈의 양쪽 끝을 단단하게 접착시켰다. 이로써 아이디어형 감채가 완성되었다. 문제는 감이 미끄러져 곧잘 감주머니 밖으로 세지나 않을까, 하는 거였다. 다행히 헝겁으로 만든 것이나 그 기능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홍시 하나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10월 들어서는 하루가 다르게 노란감이 붉게 변하고 있다. 그러면 속속 감채로 낚아채서 엄마 앞에 내놓는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이구, 우리 아들, 효자네."
며칠 전에는 작은아버지가 단감 한 박스를 보내오셨다. 엄마는 요즘 단감에, 홍시에 연신 콧노래를 작사작곡해 내놓으신다. 
효자가 되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심보통201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