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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인간아, 인간아

살다보면 원치 않는 일을 할 때가 있다.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누군가는 일단 해 보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망설여질 때는 하지 않는 쪽이 여러모로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사는 좋다고 한 일이 나빠지기도 하고, 주저하다 한 일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결과의 부침과는 별개로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그보다 슬픈 일이 없을 것이다.

지난 5월 한 달간 나는 짐을 챙겨 대구로 내려갔었다. 아는 분의 부탁을 받고 사진전을 준비하러 갔었다. 사진전에는 업체가 하나 끼었다. 업체 사장도 아는 사람이었다. 두 분은 모두 내게 직장, 사회 선배였다. 연배 차이가 많이 났다. 나는 두 가지를 고민했었다. 과연 이 일이 내가 할 일인가가 첫째 고민이었고, 그냥 좋은 선배로 알고 지내던 업체 사장과 처음으로 함께 일을 해보는 것인데 일로는 녹록치 않겠다는 것이 둘째 고민이었다.

두 선배는 나를 앉혀 놓고, 몇 번의 부탁과 한 번의 고자세로 도와줄 것을 종용했다. 면을 보고 안 도와줄 수도 없고 해서 쭈뼛쭈뼛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이상 정말이지 사력을 다해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 다음은 그런데도 업체 사장은 직원을 붙여 팀을 꾸려주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팀을 꾸려줄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자 나를 사장실에 앉혀놓고 일을 하자고만 할 뿐이었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일을 맡긴 선배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선배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 달 이 또한 지나간다."는 도사 같은 말만 되풀하며 막걸리 한 잔으로 마음을 다독여줄 뿐이었다.

이 일은 첩첩산중이었다. 사진전에 쓸 사진을 구하고, 선별하는 데 한 달 중 보름을 잡아먹었다. 조력자가 없으니 혼자서 검색하고 국가기록원으로, 지방으로 오갈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방으로 갈 땐 업체 사장이 동행하였다. 그 다음 사진 캡션을 달고, 오케이 사인을 받는 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런데 선배는 영문번역까지 주문했다. 사진전은 임박했고, 누구든 해야겠기에 안되는 영어로 초벌을 했다. 영문 초벌을 다 마쳐갈즈음, 선배는 이번에는 중국어 초벌을 주문했다. 

나는 정말이지, 이 양반이 정신나간 사람이 아닌가 하고 뜨악해했다. 대체 업체는 왜 끼워놓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선배의 연구원으로 용역을 발주한 지자체 공무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사진전을 여는데 기타 사항을 내게 어떻게 했으면 상의하려고 전화를 했단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공무원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는 금시초문인 것이 많았고 또 내가 할 역할이 아니었다. 그건 선배와 상의해서 추진하는 게 맞겠다고 전했다. 공무원과 통화에서 이 사진전은 애초에 무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전면 백지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했다. 

초청장 발송을 앞둔 사흘 전, 사진전은 결국 엎어졌다. 지자체에서 이대로는 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나는 이때쯤 돈이고, 선배고 뭐고 신물이 났다. 나는 사진전이 엎어졌으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신물이 난 것도 난 것이지만, 일이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제일 난감해 할 사람이 선배라는 것을 알았기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일어났다. 선배는 업체 사장의 손해가 막대한 것을 걱정하였다. 기가 막혔다. 업체가 한 것이라고는 내가 묵을 수 있도록 방을 빌린 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진전을 준비하러 들어온 업체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업체 사장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심 기자가 전문가잖아요. 우리 직원은 몰라요."만 반복했었다.

나는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다. 일보다 사람에게서 전절머리를 났다. 
살면서 일보다 사람을 잘 만나야 만사가 형통하다.

어젯밤 누님과 산책을 하다, 한때 김천에서 제일 잘 나갔던 학원 이야기가 나왔다. 이 학원은 3명이 동업을 했는데, 초기 자본금은 1/3씩 부담했다. 하지만 역할에 따라 원장, 부원장, 차량운전수가 됐다. 그런데 셋은 삐꺽댔다. 원장이 먼저 자본금을 빼내 나갔다. 그러고도 잘 됐다. 부원장은 원체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차량운전수가 원장이 됐다. 


그런데 원장이 된 차량운전수는 학생들보다 더 까불거리며 위신 없이 학원을 운영했다. 선생들이 원장을 우습게 여겼다. 학생들도 원장을 우습게 여겼다. 원장은 학원연합회회장 같은 감투를 좋아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부원장은 아차 싶었다. 학원생들은 가을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학원은 적자로 곤두박질쳤다. 


부원장은 내심 선생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학원이 잘 나갈 때 보너스도 넉넉히 주고, 가족처럼 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들 중 누구도 학원 경영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부원장은 인간적으로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 도리는 하자고 생각했다. 


부원장은 원장과 상의해 1년 기한을 주고 선생들이 다른 학원을 알아보도록 독려했다. 그 기간은 생돈을 가져다 퍼주어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생들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주는 돈만 꼬박꼬박 받아갔다. 부원장은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어 폐업신고를 했다. 

공자는 인仁, 인간다움을 이야기했다. 고마워할 때 고마워할 줄 모르고, 미안해할 때 미안해할 줄 모르고, 부끄러워 할 때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사과해야할 때 사과하할 줄 모르는 인간이 얼마나 많았으면 인간다움을 이야기했을까 싶다. 
/심지훈20131022 <인간아, 인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