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지망생과 이태실, 박진영
악기를 가방처럼 매거나 어깨에 둘러맨 아이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거짓말 좀 보태면 캐나다 밴쿠버 도심에서 한국인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횟수만큼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어도 고가의 악기를 맨 10대들을 보면 대한민국은 천국인 것도 같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이 죄다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우리는 환영해야 할까요, 절망해야 할까요.
그다지 대중적인 글쟁이가 아닌 제게도 간간이 원고 청탁 및 수정 의뢰가 들어옵니다.(대중적이지 않기에 이런 제안이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 며칠 전에는 한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신문칼럼 수정 의뢰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연예인 지망생을 위한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 글에 오탈자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되돌려주었습니다. 칼럼 문체로는 제법 길었지만, 문장에 힘이 느껴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칼럼은 요지가 명확했습니다. 나머지 표현은 글쓴이의 이야기 샘이 다른 것이기에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그만이었습니다.
"얼마나 잘 버티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지만 무조건 버틴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좋아하고,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 남한테 떠밀려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 시작점을 찾아야 하는 게 정답이다."
중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시작을 한 후에는 어떤 시각으로 본인이 속한 세계를 바라볼 것이며 그 안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또 무엇을 만들어 내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도 계산해야 한다."
이 칼럼은 이태실이란 분이 쓴 것입니다. 연예인을 발굴하고, 트레이닝을 시키는 일이 본업인 그에게 안타까운 현실은 "스크린에 비쳐지는 배우를 보면서 허황된 꿈에 젖어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무작정 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군요. 연예기획사 대표이자 가수 박진영도 이태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5백만불 사나이> 홍보 인터뷰 자리에서 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예계는 소질이 없는데 오래 있으면 상처만 가질 뿐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하다."
박진영의 다음 말이 압권입니다. 창의적 인간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가수가 되고 싶은데 소질이 없으면 변호사가 돼 가수 옆에서 변호사를 하든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
저는 이태실의 칼럼이 원문 그대로 실리기를 바랐습니다. 바람대로 오늘자 대구경북 일간지에 실렸습니다. 물론 오탈자와 띄어쓰기는 교정되었습니다. 저는 이 칼럼이 연예인을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부모가 읽고 자녀들에게 알아듣도록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태실은 탤런트 이순재 선생의 말을 인용해 칼럼을 갈무리합니다.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외모와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드라마, 뮤지컬, 영화, 예능 등 모든 장르에서 폭넓게 연기할 수 있는 재능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하는 건 연기력이다."
이 말 속에 진리가 담겼습니다. 진리는 무릇 전방위로 통합니다. 글쟁이에게도 통용됩니다.
"훌륭한 글쟁이가 되기 위해선 외모와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시나리오, 소설, 수필, 시 등 모든 장르에서 폭넓게 글쓸 수 있는 재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글쟁이로서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하는 건 필력이다."
사족 하나. 글쟁이도 준수한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데 동의 못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얼굴로 글쓰는 건 아닐진데 말입니다. 하지만 얼굴의 어원을 들여다 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들 것입니다. 얼굴은 '얼골'에서 나왔습니다. 입, 두 눈, 두 귓구멍, 두 콧구멍- 모두 7개의 구멍에서 나온 기운이 우리 얼굴을 형성합니다. 태생적이기도 하지만, 후천적 노력을 통해 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생긴 꼴은 곧 그 사람의 정신의 표상입니다. 준수한 외모는 곧은 정신의 산물인 것입니다. 글쟁이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외모가 중요한 까닭입니다.
/심보통 201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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