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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튀밥(심보통 1979~)


#튀밥 연대기(심보통 1979~)


온종일

엄마아빠 번갈아 드신다

거무튀튀한 튀밥을

 

검지엄지중지 집게 만들어

한 움큼 쥐고서

홀홀 한 입에 털어 넣으신다

오물오물 딱딱 씹어 넘기신다

거무튀튀한 튀밥을

 

그게 그래 맛나요?

 

너는 모른다

아빠엄마 어릴 적엔

구정 앞두고 뻥튀기장수가

대포 같은 뻥튀기 기계 앞세워

개선장군처럼 출현했니라

 

동네사람들은

한 손에는

쌀 콩 옥수수 떡가래 들고

다른 손에는

새끼줄로 엮은 장작개비 들고

뻥튀기장수 옆으로

긴 줄을 섰니라

 

어른들만 섰을까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뻥튀기장수 앞으로

모여들었니라

주민들 가져온 장작으로

불을 때

쌀 콩 강냉이 떡가래를

튀겨냈니라

 

하얀 연기가 통일호마냥

솟구쳐 오르면

조무래기들은 귓구멍을

고사리 손으로 틀어막고

소리를 기다렸니라

 

뻥하고 뚜껑이 열리면

튀밥과 강냉이와 뻥튀기가

쏜살같이 철제 그물망으로

총알처럼 박혔니라

 

채 빨려 들어가지 못한

튀밥과 강냉이와 뻥튀기는

조무래기 키만큼 날았다

떨어졌니라

 

그땐

뻥튀기 기계 안에

고양이를 넣으면

호랑이가 되어 나오고

어린애를 넣으면

어른이 되어 나오는 줄

알았니라

 

뻥튀기장수는

작품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니라

춥고 배고프던 시절

뻥튀기장수가 나눠준

튀밥과 강냉이와 뻥튀기

맛을

너는 모르니라

너는 모르니라

 

아빠는

검지엄지중지 집게 만들어

한 움큼 쥐고서

홀홀 한 입에 털어 넣으신다

 

오물오물 딱딱 씹어 넘기신다

추억을 삼키신다.


/2013년 4월 11일 아빠엄마 튀밥 드시는 모습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