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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특별한 결혼식

2013년 1월 20일 오후 1시 김천파크호텔 메리골드홀에서 서울대학교 우한용 교수님의 주례로 신랑 심훈 군과 신부 구희정 양의 결혼식이 많은 축하객들의 축복 속에서 열렸다. 


#특별한 결혼식
형님 결혼식은 아버지가 총괄기획했다.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한 선물이 있었다. 

원칙 다섯
하나, 양가 어머니들의 촛불 점화는 하지 않는다.
둘, 웨딩홀 중앙길은 어느 누구도 밟지 못하게 한다.
셋, 신랑이 식중에 양가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지 않도록 한다.
넷, 신랑신부에게 짓궂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일절 삼간다.
다섯, 축가 등 시끄러운 이벤트는 삼간다. 

원칙 이유
하나= 촛불 점화는 원래 아버지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다 미리 켜놓고 하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들이 나섰다. 그런데 어머니들이 키가 작아 신랑신부가 처음 밟고 서야하는 계단을 넘어 주례석까지 올라가 불을 붙인다. 신랑신부와 주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둘= 웨딩홀 중앙길은 결혼식 전에 축하객들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밟고 지나간다. 이 길은 신랑신부의 신행길(부부의 연을 맺으러 가기 위해 맨 처음 밟고가는 길)이다. 신행길은 신성한 길이다. 둘의 결혼을 축하하러 와서 제멋대로 길을 어지럽히는 일은 있어선 안된다. 아버지는 이를 위해 호텔측에 얘기해 식전까지 네 기둥에 중앙길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경고장을 네 장 붙여놓았다가 식이 시작되면 떼도록 했고, 사회자를 통해 몇 번이고 주지시켰다.

셋= 이날은 신랑신부를 축하해 주는 자리다. 절은 신성한 웨딩홀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한테 올리는 절은 신혼여행 다녀와 집에서 하는 것으로 족하다.

넷= 결혼식은 장난스러우면 안된다. 양가 어른들 다 모셔다 놓고, 사회자가 짓궂은 요구를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만큼 부끄러운 게 없다.

다섯= 축가는 실내 결혼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노래 잘하는 가수가 불러도 앰프와 방음벽 시설이 육성을 최적화하지 못한다. 굉음을 낼 바에야 정숙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런 원칙 아래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그러자 축하객들은 여느 결혼식과 달리 주례를 조용히 경청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날 주례는 서울대학교 우한용 교수님께서 맡으셨다. 먼저 식사하러 자리를 뜨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2013년 1월 20일 오후 1시 김천파크호텔 메리골드홀에서 열린 형님 결혼식에서 소설가이자 시인인 아버지가 동영상을 몰래 준비해 축하객들에게 선보였다. 

형님 결혼식이 특별했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특별선물이 있어서였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아버지가 동영상을 몰래 찍어 자작시 <사랑하는 사람은 늘 가까이 있어야 한다>를 신랑신부에게 낭독해 주었다. 마지막 피날레는 어머니가 "얘들아,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장식했다.

형님과 형수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까지 눈물이 핑돌았다.

결혼은 거래가 아니다. 시댁이 부산인 형수네 일가가 김천으로 왔다. 그 분들 음식값을 우리집에서 댔다. 그밖에 소소한 경비를 부담했다. 형님네는 여자쪽에서 1000만원 주면 500만원 돌려주는 식의 혼수를 생략했다. 우리집이 넉넉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결혼식은 소박한 대신 경건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소신 때문이었다. 신혼집은 형님과 형수님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결혼식을 그렇게 가볍게 치르니 이혼도 그래 쉽게 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겉모습만 요란한 결혼식은 불편하다. 결혼식은 두 집안의 품격의 반영이기도 하다. 

형님과 형수님의 퇴장 웨딩마치(행진곡)은 축하객들의 박수가 전부였을 뿐이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형님 결혼식이 있던 2013년 1월 20일은 대설이었는데, 봄날씨 같이 따뜻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