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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희망칼럼11] 솔선해 도울 사람 꼽아보기

# 솔선해 도울 사람 꼽아보기

 '친구를 도와주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에요.' '고마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말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이지만 예닐곱살만 되어도 이 말이 맞다, 그르다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당연히 실천하고 산다. 아이들의 얼굴에선 악의나 꼼수를 읽을 수 없다. 그들의 행동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다. 


남 얘기가 아니다. 너와 나도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 당연한 말도 참 지키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게 숭악한 마음을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리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남들이 무서워서...'라는 말을 곧잘 뱉게 된다. 나만 피해자 같은 마음이 든다. 억울하기도 하다.


억울해 마라. 너와 같은 심정을 너가 그렇게 '남들'의 부류에 묶어버린 그 남들도 너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나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잘 없는 게 현실이다. 그게 다름 아닌 다름(difference)이다. 생김이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다름은 때로 대단히 무섭고 위험하다. 뜻하지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자살로 이어져 간접살인의 우를 범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명징해진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어떻게 가릴 것인가. 그건 조직을 떠나 봄으로써 가능해진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진짜 좋은 사람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너를 대해주는 사람이다. 너가 보기에 평생 도반으로, 벗으로, 동료로, 선배로, 멘토로 지낼 것같은 사람도, 오로지 너의 착각이었다고 충격적으로(!) 느낄 때가 살다보면 한 번은 온다. 


이직을 한다거나 어떤 이유로 조직에서 떠나보면 세상 민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너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 속단하지 마라. 당나라 어느 재상은 불사선악不事善惡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불사선악. 너에게 잘 해주면 좋은 사람, 너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 


그런데 이 말은 곱씹어보면 세상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불사선악은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문제가 명징해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돕고 챙겨야 하나.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으면 불가원불가근을 원칙 삼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너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는 반드시 존재한다. 마음이 절로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개 너를 너의 지위와 직분과 자리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대하는 사람이다. '인간 000'을 순수하게 좋아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너의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떤 부탁을 해오기도 전에 네가 알아서 솔선해 도와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믿었던 적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원망하고 미워할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미워 말고, 원망도 마라. 그들이 너와 정서상 멀어졌다 해도 그건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 너의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웠고, 너에게 했던 것처럼 그 누군가에게 충실하고 있을 테니까.


정리하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세상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너가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는 상대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너가 솔선해 도울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이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인 고로.


/심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