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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32년 전 그날...

필자가 태어났던 1979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파란波瀾이 요동친 해로 한국현대사는 적고 있다.
10월 26일 박정희 총살, 12월 12일 군부쿠데타. 
정국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돌이켜보면 도화선은 19년 전의 4.19였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이란 무모한 것이지만, 숱한 가정이 여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건 과오過誤의 반성이요, 안타까움 때문일 터이다.

만약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이 내 겨레, 내 조국을 잘 이끌었다면, 1979년의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났을까.

박정희가 유신維新을 선언하지 않았는 데도 김재규가 그의 주군主君이자 동지同志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을까.

김재규와 그의 수하가 거사巨事를 도모한 뒤, 육군본부 벙커가 아닌 보안사령관실로 향했다면, 그래서 전두환의 지휘권을 빼앗았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전두환은 비상전시체제에서 노태우 등 하나회 멤버를 주축으로 그저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옹립, 군인으로서 그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우국충정憂國衷情만 가졌더라면 이 나라 2011년의 모습은 좀 달라졌을까.

전두환에서 노태우에게 권력이양이 안 됐고, 바로 YS가 정권을 잡아 문민정부文民政府가 5년 먼저 들어섰더라면, 우리나라는 IMF(외환위기) 구제란 국제망신을 피해갔을까.  

문민정부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IMF란 폭탄을 국민 가슴에 골고루 투여하지 않았다면, 50년만의 야당으로의 정권 이행이란 숙명宿命을 DJ는 맛볼 수 있었을까.

DJ의 후광後光이 없고, 이회창의 아킬레스건(아들 병역회피 혐의)이 당시 대선틀 밖에 있었대도, 노무현이란 불세출의 정치인이 청와대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노무현이 청와대 주인이 되지 않았던들, 극단적 말로末路를 맞았을까.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경제를 이끌었다면, 이회창의 아킬레스건은 아킬레스건 축에도 못 낄만큼 각종 부정, 비리 혐의란 올가미에 꽁꽁 묶인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명박에게 내 나라 국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덥썩 대한민국 주식회사 운영권을 넘겨주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더 개판쳐 놨다'는 원성이 빗발치지 않았대도, 정치의 문외한門外漢인 안철수가 대권 유력주자로 단숨에 튀어올랐을까.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1급수로 알려진 만년萬年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또한번 누란지세累卵之勢에 봉착했을까.

대한민국 정치사는 결과론적 해석으로 고수와 하수를 가늠한다. 알고 보면 고수도 하수고, 하수도 하수다. 정치란 그렇게 허망한 것이다. 점치려 하지 마라. 판세를 읽으려 하지도 마라. 대통령은 하늘이 점지해야 한다고? 그래 웃기는 얘기지만, 그게 그나마 정답에 가깝다.

오늘이 12월12일이다. 32년 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휘하 하나회 멤버와 전복顚覆한 날이다. 오늘자 중앙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전두환씨 
추징금 미납액은 1679억원이고, 노태우씨의 그것은 231억원이란다.

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법무부령 제792조에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 사무규칙'에 따르면 유산과 함께 상속되는 채무와 달리 벌금이나 추징금 등은 납부자가 사망한 경우 '집행 불능' 처리된다.
노태우씨 동생 월급도 추징금으로 거둬들인단다. 동생 나이는 76세.

필자가 이 기사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은 대통령 연금이다.
노무현씨는 퇴임 후 월 1천만~1천500만원 가량을 매달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상승률 등이 반영돼 매년 조금씩 오른 금액이고, 매월 봉급 수령액이 차이나듯 대통령 연금도 매달 조금씩 달라 '가량'이란 표현을 쓴단다.

직장인 봉급은 수년째 동결되기 일쑤인데, 나라 살림 거덜낸 장본인들에게는 대통령 예우법에 따라 물가상승률을 적재적소에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예의를 잘 차리는 나라다.

그런데 이따금 국민은 평생 밑지는 장사만 하는 것 같아 골이 날 때가 있다. 필자가 우매해 그런 것인가. 한데 필자는 여태 이런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내 연금은 국민들 위해 사용해 주세요. 다들 어렵잖아요. 나는 받을 자격도, 염치도 없소.
32년 전, 우렁찬 고고呱呱로 세상 신고식을 치른 지 3달 뒤, 
역사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휩싸인 필자의 단상斷想이다.

오늘은 십이십이(12.1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