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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프리즘

[미디어窓] 무자녀 신혼부부(엠플러스한국 2월호)


시사에세이


무자녀 신혼부부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아내가 임신했다!

아주 묘했다. 내가 육아 책 예닐곱 권을 주워온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나는 이 책들을 아내 서재에 놓아두면서 아내에게 자기도 이제 엄마 될 준비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거짓말처럼 아내는 들뜬 목소리로 자기, 나 드디어 임신인가 봐. 진하게 두 줄이야!”하고, 내 눈앞에 임신테스트기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우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아침을 그렇게 큰 축복으로 시작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책 주워온 사연을 일러두어야겠다. 결혼하고 난생처음 살게 된 아파트에서 나는 곧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재활용 쓰레기분리수거장에서다. 매주 일요일 쓰레기 버리는 날이 되면, 종류별로 엄청난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 폐지 코너에는 멀쩡한 어린이 책이 부지기수로 쓰레기더미에 쌓였고, 베스트셀러도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왔다. 연말연초엔 교과서가 한가득이었다. 이 쓰레기가 돼버린 책들의 사연은 능히 알 만했다. 철 지난 책들이란 것. 헌데 이 책들을 가만 보고 있노라니, 우리 국민들이 책을 대하는 마음이 퍼뜩 읽혀 참으로 서글퍼졌다. 마음의 양식을, 교양머리를 우리는 마구잡이로 내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해서 버려진 아이 입양하는 심정으로 책을 수권씩 주워와 지인과 나누기도 하고, 내 지성을 살찌우는 데 요긴하게 쓰고 있다.

다시, 아내가 임신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3년 연애하고 서른여섯 연말에 결혼해 어물쩍 서른일곱이 돼버렸다. 비교적 늦은 결혼이었던 터라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는 있을까걱정했다. 나는 다 잘 된다. 걱정마라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아내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을 노력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와 직장동료의 임신소식이 속속 들려오자, 아내는 적지 않게 흔들렸다. 속상해 울기도 하고,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다. 둘 다 정상으로 나왔다. 위안은 됐지만,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따른 체증 같은 묵직함은 수시로 아내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남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집안 어른의 권유로 한약을 지어먹었지만, 숙제는 그대로였다. 남편으로서 뭐라도 해야 했다.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목청을 구해다 줬고, 산삼도 구해다 먹였다. 그런데도 또 1년이 지루하게 허탈하게 속상하게만 흘러가는 듯하다가,

아내가 드디어 임신했다!

크리스마스 이튿날, 공교롭게도 한국일보 인터넷 판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3~5년 차 부부 20%가 무자녀맞벌이고소득일수록 아이 덜 낳아.’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4)가 작년(3,763만명)을 정점으로 올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 말은 대한민국이 올해부터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 시대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진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행복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은 나만, 우리만 살다 가면 그만인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내 나라가, 인류가 건재할 수 있도록 토양은 만들어줘야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


*이 글은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월간문화잡지 <엠플러스한국>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