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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돌

#돌, 쟁반같이 둥근 돌
오늘 우리 동네에서 큰 싸움이 났다. 고성은 물론 육두문자가 오갔으니 큰 싸움이다. 젊은 사람은 썰물 밀려 나가듯 하고, 집집마다 환갑이 넘은 어르신들이 그 중 젊은 가장 노릇을 해 온 형편을 따지자면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은 족히 된다. 
싸움의 사단은 돌 하나였다. 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돌. 이해관계 당사자 말고는 사달이 나기 전까지는 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민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렇잖아도 하늘은 잔뜩 찡그렸고, 곧장이라도 괴성을 동반한 장대비가 내리 꽂혀야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시겠거니 했던 날, 일흔이 넘은 어르신과 쉰을 갓 넘긴 아주머니가 맞붙었다. 거기에 아주머니의 서른도 안 된 아들까지 이 싸움에 가세하면서 동네는 온통 똥물을 뒤집어 쓴 것 같게 눈이며, 귀며, 입이며 감각이란 감각이 더렵혀졌다.
싸움도 탓만 있겠냐는 듯, 싸움 덕에 그동안 얼굴보기 어려웠던 이웃들이 진앙을 감지하고 싸움의 진원지로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어르신은 왜 자꾸 남의 집 앞에 돌을 가져다 놓느냐는 것이고, 아주머니는 그 돌은 우리가 가져다 놓은 게 아니다는 거였다. 싸움은 보통 오해와 불필요한 이해로부터 시작되기 십상인 법. 그래서 싸움판은 타자를 이해시키기보다 나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한 판의 악다구니 경연장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구경 중에는 싸움구경을 으뜸으로 친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가관도 아닌 게 싸움판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도 어른 싸움에는 애들은 끼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새파란 아들이 끼어드는 통에 주민들은 말릴 재간도 포기하는 눈치였다. 아들의 말이 원체 걸죽해야 말이지. 70된 어르신에게 육두문자를 속사포 쏘듯 쏘으면서 드잡이하려 드니, 말리던 주민들도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쭈볏쭈볏 싸움판의 중앙부에서 물러섰다.
그러고도 젊은 피는 한 번 데운 피를 쉬이 식히지 못하고 어르신들을 상대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고 마구마구 비수의 언사를 쏘아붙였다. 
'아, 저 친구 후사를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을 보면서 한동안은 반갑기도 했지만, 점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의 싸움을 보고 반가웠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농촌은 그만큼 적막강산이고, 워낙 죽은 거주지가 돼놔서 오랜만에 동네 어른들을 한 자리에서 보니 반가웠던 거였다. 
그렇지만 싸움의 도가 썅도요, 무도로 가니 서글펐던 거다. 내 어릴 적에는 동네에서 심심하면 싸움이 일어났다. 그래도 어른 싸움에는 애들이 끼지 않았고, 애들 싸움에도 어른이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싸움판에 뛰어든 이는 어떻게든 서로 원만하게 해결토록 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일단 서로 떼어놓고, 숨을 고르게 한 뒤 흥분에 대해 사과하는 선에서 싸움은 대체로 매조져졌다. 
싸움 당사자의 자식들은 남의 어른 탓하기 전에 제 부모를 먼저 뜯어말리는 게 상수였다. 그런 식의 싸움은 싸움의 본보기가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싸워도 정도를 넘지는 않았다. 살다보면 수가 뒤틀려 싸울 수도 있지, 뭐-하는 건 으레 말 안해도 통하는 상식이었다. 그래서 싸워도 원수지간은 되지 않았다. 
탁주 몇 되 받아다 놓고 김치 하나 안주 삼아 주거니받거니 하면 그걸로 화해였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본 진기한 싸움은 이건 네 편, 내 편 갈라 끝장을 보자는 것인냥 가도가도 너무 갔다. 나는 그래서 너무너무 슬펐다. 
우리 동네에서 이런 기가막힌 싸움을 보다니. 그것도 어느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돌멩이 하나 때문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렇게 드세게 맞붙었어도 폴리스가 출동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폴리스까지 출동했으면 이건 그야말로 '막장 전원일기'를 한 편 써야할 판이었을 거다.
싸움도 잦아야 싸우는 법을 안다. 이때 싸우는 법은 아무리 화가 나도 지킬 건 지켜가며 싸우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진심어린 화해는 못할 것 같다고 본다. 예전처럼 평온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르신이 그 연세에 그렇게 욕을 보고도 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싸움에서 정신적인 충격은 어르신 쪽이 대단히 셌을 것 같다. 아주머니는 기껏 약간의 억울함이 있었을 뿐이므로... 
나는 그 전선의 치열한 전쟁이 유야무야 휴전을 갖은 뒤, 저녁무렵 그 돌멩이를 보러 갔다. 아팠던 건 싸운이들과 주민들만은 아닌 듯했다. 쟁반처럼 생긴 둥근 돌멩이도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많이 생겼다. 동네 벽면에 세워진 돌멩이는 여태 우는 것 같았다. 
돌, 돌, 돌
돌, 돌, 돌
돌은 그렇게 우는 것 같았다.
/심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