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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텃밭의 역설

@ 텃밭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로망의 대상이지만, 시골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다. 


텃밭가꾸기는 많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로망이다. 콘크리트와 정원으로 잘 다듬어진 도시형 주택가에는 먹거리를 별도로 심어 수확해 먹을 만한 땅 한 뼘이 귀하디귀하다. 


원래 모자라면 귀하게 여기는 건 인지상정이라지만, 팍팍한 인심으로 요동치는 세태에 텃밭가꾸기만큼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없지 싶다. 


내가 직접 가꾸지 않아도 어기차게 자라나는 곡식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직접 정성을 들이고 열심히 가꾸는 만큼, 딱 그만큼만 정직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고추며, 콩이며, 감자며, 깻잎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멋모를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면 야외로 나가 한 밭떼기 주말농장을 찾아 가로세로로 맞춰놓은 꼭 그만큼씩의 텃밭가꾸기에 그리도 애착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어미뱃속에서 나와 땅으로 돌아간다는 그 진리를 시나브로 알아가며 흙을 뒤집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내고, 다 자란 야채며 과일을 한아름 바구니에 받아내는 그 경이로운 기쁨을, 한뼘 텃밭에서 만끽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도시 사람들의 '농촌 회귀 본능'을 자극해, 아예 귀농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농촌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1980년대 이촌은 끝이났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자들이 세월 앞에 하나둘 쓰러져 나자빠질 때, 자신들의 터를 자신들이 스스로 지켜내기에 벅차질 때 문제는 발생했다. 


그 문제는 우리동네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발생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한 해 그 겨울, 할아버지들이 줄초상났다. 그 뒤 동네는 할머니들만 외롭게 모여 앉았다. 


소마굿간에 소가 비어갔고, 돼지마굿간에는 돼지가 비어갔다. 몇해 뒤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을 뒤따라 저승으로 갔다. 


남은 자의 슬픔, 그것도 일말의 희망이 있을 때나 하는 이야기다. 


공가는 늘어갔고, 옛 농기구 창고는 하나둘 쓰러져 갔다. 몇년 째 방치되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못 보던 중년들이 그 터를 다듬고 가꾸어 마음 곳곳 공터에 채소류를 심기 시작했다. 


누구는 집터를 아예 밀어버리고 그곳에 배추농사를 지었고, 또 누구는 집 안마당에 원래 있던 방을 밀어버리고 고추를 심었다. 


누울 곳이 있어도 누울 사람이 없으니 나름의 땅떼기 활용법이리라. 


대한민국 경제규모가 커진만큼 농촌 사람들 삶의 질도 높아지긴 했지만, 모양은 꼭 1970년대 가가호호 터밭을 일구어 일용할 양식을 해결하던 모양으로 후퇴하고 있는 듯도 하다. 


저녁을 먹고 동네를 거닐다 터밭을 보고 있노라니, 콩이 대나무를 칭칭감아 감아올라가는 모습이 싱그럽고 역동적이게 보이다가도, 곧 내 고향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으로 읽혀 가슴 한쪽이 먹먹해왔다. 


그 먹먹함의 요체는 터밭의 역설때문이었고.

(2012년 6월 12일, 고향 경북 김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