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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박근혜의‬ 인성교육, 시진핑의 인성교육

‪#‎박근혜의‬ 인성교육, 시진핑의 인성교육

장면1. 얼마전 한지를 취급하는 화랑이 모여있는 대구 봉산문화거리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때아닌 한지 사재기 때문인데, 사연은 이렇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인 지난 2월 서예를 초중고 정규과목으로 지정했는데, 이 여파가 근자에 우리나라로 번졌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서예를 초중고교생에게 가르치겠다고 하자, 우리나라 종이는 물론 일본 종이까지 중국으로 넘겨줘야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중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에 걸릴 수 있다는 우스개가 그냥 우스개는 아닌 듯하다. 실제 작년에 500원하던 중국산 부채가 올해 1천원으로, 1천500원하던 부채는 3천원으로 각각 2배나 뛰었다. 화랑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서예를 정규교육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빠르면 8월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종이값이 들썩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종이 사재기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장면2. 박근혜 정부는 출범 5개월 만인 지난 23일 왕따, 폭력을 막기 위해 인성교육을 초중고 정규교과에 포함키로 했다. 인성교육은 공감.의사소통, 갈등해결, 자기존중, 감정조절, 학교폭력 인식과 대처 등 모두 6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 같은 교육을 받으면 학교폭력이 원천적으로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게 교육부의 공식입장이다. 교육부는 올 2학기부터 300개 학교를 우선 실시한 뒤, 2017년께 모든 학교에 적용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교생까지 네 단계로 구분된다. 역할극, 음악미술활동, 집단상담, 감정코칭 등 체험 형태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학교폭력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초등 저학년부터 바른 언어 사용 교육을 강화하고 언어순화 캠페인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이 서예를 초중고 정규교육에 포함시킨 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성교육을 초중고 정규교육에 포함시킨 것은 '국민행복시대'를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두 나라 정상이 내세운 교육정책은 둘 모두 현재와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미래 주역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자라게 할 것인가하는 교육철학이 녹아 있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익히는 학문이 아니다. 바른 정신을 익히고, 수신하는 학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래의 '민도民道' 함양을 위해 서예를 중요한 교육수단으로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래의 '국민행복'을 위해 인성교육을 중요한 교육수단으로 내세웠다. 

시진핑 주석의 교육철학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철학은 두루뭉술하다. 인성교육을 위해 '인성교육'이란 과목을 지정한 나라는 유사 이래 없을 것이다. 인성은 정신머리를 가르쳐야 바로 설 수 있다. 

중국 교육부는 서예교본으로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 조맹부(趙孟頫) 루쉰(魯迅) 마오쩌둥(毛澤東) 치공(啓功) 등을 추천했다고 한다. 우리는 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소학(小學)을, 서당에선 천자문(千字文)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가르쳐 인성교육을 시킨 경험이 있다. 

한자는 중국어가 아니다. 한자는 동양의 언어이다. 일본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생들에게 서도(書道)를 가르친다고 한다. 연말연시 붓을 들고 연하장을 띄우는 건 대개가 주부들이라고 한다. 때마침 한중일 3국이 공통한자 800자를 지정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한 대기업에선 벌써부터 이 공통한자를 갖고 승진시험을 치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는 서예학과가 진즉에 폐과됐다. 인성교육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서예교육장을 없애놓고, 인성교육 운운을 넘어 정규과목으로 '인성교육'까지 만들었다. 그러니까 중국은 서예로, 일본은 서도로, 우리나라는 '인성교육'으로 인성교육을 시킨다는 말이다. 마지막은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 퍽 든다.
/심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