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프리즘

[미디어窓] Crazy MR. J(엠플러스한국 5월호)


시사에세이


Crazy MR. J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크레이지 미스터 제이(Crazy MR. J)라고 있다. 한국명은 김광중. 마술사다. 그를 만난 건 지난달 셋째 주말 전남 여수 낭만포차거리에서였다. 저녁을 먹고 거리구경에 나섰다가 공연 중인 그를 보게 됐다. 처음엔 200명가량의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광경에 호기심이 일었다. 보다 보니 꽁꽁 묶인 쇠사슬에서 3초 만에 빠져나오는 엔딩 퍼포먼스가 끝나고, 그 많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도 남은 최후의 몇 사람에 낀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그렇게 훌 떠나버리는 건 예의가 아닌 듯싶었다.

10분쯤 봤을까. 길거리 공연을 다니기엔 참 아까운 재주라고 생각했다. 관객을 사로잡는 언변(코미디언 뺨치는)과 흥을 돋우는 음악(스피커 음향이 나빴음에도) 그리고 관객을 연신 놀라게 만드는 마술쇼(그의 언변이라 더 재미있는)에 아이들은 시나브로 조금씩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건현장으로 치면 폴리스라인을 넘어버린 거였다. 그가 아이들을 재미있게 호통 치자, 아이들은 저들끼리 너 때문이야하며 티격태격 됐다. 그 모습까지도 공연의 한 장면인 양 구경꾼들은 깔깔댔다.

, , , 네 박자에 맞춰 흰 꽃이 (빳빳한) 검정색 줄이 되고, ‘, , , 또 네 박자에 맞춰 검정색 줄이 금세 흰색 줄이 됐다. 3개로 시작한 저글링이 순간 4개가 되고, 공 사이에 어느새 무시무시한 칼이 함께 돌아갔다.

구경꾼 중 한 사람을 즉석 섭외해 관객의 입에 종이를 물리더니 끝 모를 종이뽑기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러더니 마임(mime)으로 누가누가 길게 뽑나 시합을 하자고 제안한다. 관객의 종이는 그 전과 달리 금세 끊긴다. J의 입에선 끊임없이 종이가 나온다. 익살스럽게 나처럼 해보라고 유도한다. 관객은 계속해서 시도하지만, 매번 툭툭 끊긴다.

마지막으로 종이뽑기 시합을 한 그 관객에서 자기 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달라고 한다. 꽁꽁 묶인 채로 자물쇠를 채워 달라 한다. 위험하니 아이들은 뒤로 물러나라 한다. 셋을 세어달라고 구경꾼들에게 말한다. 그 사이 자신이 이 쇠사슬을 풀고 나올 것이라 호언한다. 그러면서도 지난번에는 관객들이 기다리다 지쳐 다 가버렸다고, 죽는 줄 알았다고, 못 빠져나오면 자기를 살려주고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의 공연은 이야기에 연속성이 있다는 면에서 잘 짜인 마술 스토리텔링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반말의 미학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댔지만, 그 반말은 해학으로 낭만포차거리 밤을 수놓았다. 반말을 해악으로 반전시키는 말재주 역시 그의 달란트(타고난 재주)로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그는 구경꾼들에게 소정의 공연료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언제 그에게 눈길이나 준 적 있었냐는 듯 뿔뿔이 흩어졌다. 초등학생 부모를 둔 아이 몇 명이 J의 모자에 공연료를 지불할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기꺼이 1만원을 지불했다. 10분이었지만, 국내 유명마술사보다도 더, 대학로의 그 어떤 공연보다도 더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J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J도 그랬다. 두 번째 포즈에서 그는 브이(V)를 그렸지만, 나는 엄지척을 풀지 않았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그의 대성을 진심으로 바랐다.

여수에서 돌아와 J를 검색했다. 홈페이지(www.doyoulikemagic.net)가 있다. J‘13년 동안 30여 개국에서 1만회 이상 공연했다‘Crazy Mr. JShow는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 자신한다고 소개해 놓았다. 그는 동아인재대학교 마술학과를 졸업했다. 이미 인재였던 그는, 호주로 건너가 명문 퀸즐랜드대학교에서 마술을 전공했다. 신념을 갖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젊은이였다.

우리나라 마술사 수를 검색해 봤다. 찾을 수 없었다. 한국마술사협회가 연관검색어로 나오기에 문의 차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이은결, 최현우 등 겨우 손에 꼽을 만한 마술사 정보만 인터넷에 가득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J가 그들의 공연보다 나아보였다. 그날, 포차거리 앞 여수 밤바다는 J 덕분에 더욱 빛났고 아름다웠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버스커 버스커 <여수 밤바다>)’

많은 이들에게 J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전화 대신 펜을 들었다.


*이 글은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월간문화잡지 <엠플러스한국> 5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