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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박원순의 선택과 사회불평등론

1980년대 중반, 단과대학의 세분화는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대학의 백화점화가 시작된 것이다. 단조로운 대학에서 복잡한 대학으로 변한 것. 이 변화로 대학은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동시에 구성원의 격분을 불러일으킨다. 혼란은 복잡함에 기인한 것이고, 격분은 나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요즘 학과의 나열은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20년전 만해도 이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당시엔 행정상 학과의 나열은 설립년도를 기준하기도 했고, 담당자의 마음대로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어떤 규칙과 질서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다 과가 세분화되면서 어떤 식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가나다 순의 정렬이었다. 필시 행위자는 일목요연하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여겼으리라.
 
하나 이 방식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신성한 대학에도 차별과 계층으로 대변되는 사회불평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분노의 목소리가 왕왕 나왔다. 교수들 사이에서 특히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수들은 가나다 식 정렬 방식을 규칙과 질서로 인식하기보단 서열화로 간주, 사회불평등의 불길한 조짐으로 치부했다.
 

@우리는 세상을 너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촌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세상을 너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회학에서는 사회불평등과 관련해 8개 용어를 사용한다. 이 8개 용어를 나열하면 사회불평등 절차가 된다. 
 
그 첫째가 차이(Difference)이다. 차이는 태생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면, 제 밥벌이는 각기하게 태어난다는 말이다. 둘째는 구분(Differentiation)이다. 태생적 재능의 차이에 따라 '너와 나'가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단계가 온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A가 B보다 매번 잘하면 그때부터 구분이 되는 거다. 
 
그러면서 인간사회에서는 서서히 서열(Ordering)이 매겨지게 된다. 사회불평등의 세번째 단계다. 서열이 매겨지면 그건 곧 등급(Ranking)으로 나타나고, 등급은 곧 평가(Evaluation)의 개입을 뜻한다. 이것이 네 번째 단계다. 
 
이 단계를 그치면 차별(Discrimination)은 필연적인 게 된다. 데이비스나 무어 같은 사회학자가 인간사회에서 사회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건, 아마 이런 사회구조를 꿰뚫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이 발생하면 개별적 불평등(Inequality)이 잇따른다. 이 개별적 불평등이 모여 구조화된 불평등(Structured Inequality)을 이루고, 이것이 종래에는 사회불평등(Social Inequality)이 된다.
현대는 사회불평등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나 사회불평등이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이 가진 재능만큼, 당신이 일한만큼 보상(Rewards)하겠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났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새로운 레토릭으로 당선된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의 첫 업무는 무상급식 결재였다. 무상급식에는 평등사상이 녹아있다. 무상급식 반대론을 펴온 쪽에선 시종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의 자녀, 그러니까 '강남 키즈'에게도 무상급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데 회의적인 시각을 보여왔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의 인식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공짜 밥'을 먹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차별은 불가피하고, 거기서 놀림거리가 탄생한다는 논리다. "00는 못 살아서 공짜 밥 먹는다."는 말이 나돌 것이란 것.      

(이는 너무 편협한 시각에 불과하지만, 무튼) 이 문제로 오세훈 전 시장은 시장직을 걸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새 시장이 입성했다. 하나 무상급식 찬성론자인 박 신임 시장이 무상급식에 오케이 사인을 했다고, 이것을 평등의 관점으로 본 것이 옳았다고 할 건 아닌 것 같다. 박 시장은 결재했고, 이제야말로 그를 위시한 무상급식 찬성론자들의 입장이 맞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인간은 이기적(self-interest)인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불평등은 인간의 이기심을 제어하고 효율성과 자발성을 발현시키는 일장一長을 갖는다. 반면, 이기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구조화된 사회불평등은 불가피하게 기회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일단一短으로 작용한다. 이 일단은 이기적인 인간들이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다.

데이비스나 무어는 박 시장의 선택을 어떻게 볼지도 사회학도로서 궁금하다. 물론 여러분이 어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사회불평등 관련 개념1)차이(Difference)-2)구분(Differentiation)-3)서열(Ordering)-4)등급(Ranking)/평가(Evaluation)-5)차별(Discrimination)-6)불평등(Inequality)-7)구조화된 불평등(Structured Inequality)/사회계층화(Social Stratification)-8)사회 불평등(Social Inequality)/제도화된 차별적 보상(Institutionalized differential rew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