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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대구 서구청장 오판의 변

#. 약간 쪽팔린다. 요즘 대세 꼼수 주진우 버전으로 하면 "부끄럽구요~"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대구경북 유력지 전직 기자로, 대구 서구청 전 출입기자로, 대구 서구청장 판세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점이 쪽팔리고, 부끄럽다.

#. 가장 무난한 전망세를 내놨더라면, 그러니까 한나라당 후보 강성호가 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판세를 전망했으면 결과를 맞추기는 했을 것이다. 하나 그건 하나마나한 판 읽기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이 지는 게 이상한 거다. 되레 다른 당 후보 혹은 무소속 후보가 이기는 게 역사를 쓰는 것이고, 주목받을 일이다.

#. 심정적으로나, 인물 면에서나 친박연대 신점식이 월등히 낫다는 생각에서 나는 한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박근혜 바람, 대구 서구엔 안 분다(http://masilwa.tistory.com/10 참고)' 제하의 당선 예상자 분석 글에서 당선자 맞추는 건 틀렸지만, 옹색한 변명을 하자면 실제 박풍(朴風)은 불지 않았다.

@ 10.26 대구 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강성호 '퍼른 점퍼당' 후보. 몇 번째 도전이던가. 잘모르겠지만, 잘 하시길.<사진=영남일보 DB>

#. 그건 개함 결과가 말해준다. 
강 후보는 총 유효투표수 4만1천461표 중 2만2천624표(55.01%)를 획득해 1만8천498표(44.98%)를 얻은 친박연합 신점식 후보를 제쳤다. 9%차(差)다. 이 차라면, 대구에선 친박연합 후보가 매우 선전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는데 딴지 걸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 이번 서울시장 선거나 대구 서구청장 선거나 차악의 선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어느 색의 깃발을 쳐들고 나와 당선됐든 그렇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의 눈이 서울시장으로 쏠릴 때, 나는 그래도 대구 서구에도 일말의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폭풍칼럼'을 썼다. 왜냐하면, 대구는 정말 어렵다.

#. 기본적으로 지역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행정, 언론, 법조, 학계 이 네바퀴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행정의 우두머리는 정치가다. 정치의 힘이 지대할 수밖에 없는 게 행정의 영역이다. 이상적인 것은 같은 색의 깃대가 구청마다 광역시마다 꽂히는 게 좋다. 예산 문제 등 해결할 문제를 공조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민주사회는 다양성이 강조된다. 이 대목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 대구는 '보수꼴통'이란 이미지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동네'다. 기실 인구 250만명(세계육상 땐 공영방송 KBS가 280만명이라 구라쳤다.) 대구광역시가 거의 동네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다. '고담도시 대구'도 대구의 또다른 주홍글씨다. 이런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선 선결돼야 할 것이 있다. 

#. 대구 지역사회에는 
우스개로 이런 얘기가 돈다.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중앙부처 가면 한 마디도 못한다. 예산 당겨 오는 거 봐라. 정말 무능하다. 전라도는 어디 어디 회의한다 하면, 어째 아는지 알아서 지역 특특산물을 회의장소에 바로 공수한다. 전라도 공무원보다 못한 게 대구경북 공무원이다." 예산 따오기는 로비가 기본이란 서글픈 자화상을 듣는 것 같지만,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 그런데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치열한 경쟁을 통하지 않고 퍼른 점퍼 하나 입고 선거철에 좀 다니면 단체장으로 무혈입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민의 귀가 되겠다가 아니라, 공천경쟁에 열과 성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저네들끼리 박터지게 싸운다. 당선이 목표지, 지역민 보듬겠다는 건 서열이 그 뒤쪽이다.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정당정치의 프레임이 깨졌다. 나는 대한민국 66년 헌정사에 똥칠한 날로 기억하고 싶다. 
 

#. 따지고 보면 지역민이 자초한 거다. 퍼런 점퍼 뽑아주면 뭔가 혜택이 많을 것 같은 보상심리, 혜택은 많지 않아도 피해는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기대심리 같은 것들이 작동하는 것 같다. 하나 경쟁력 없는 당선자는 정작 중앙에서 힘을 못 쓴다. 단체장에게 투표율과 득표율, 그리고 상대후보와의 박빙승부는 곧 중앙부처에서 실력자, 파워맨으로 통하는 지름길이다.

#. '달랑' 퍼런 점퍼 하나 입고 단체장된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구의 퍼른색 깃대 사이 무색무취 깃발, 대구 서구청이 희망의 신호탄이라고 보았다. 물론, 그건 애오라지 서중현의 실력(?)으로 이룬 것이지만 무릇 정치란 바람 아니겠는가. 그 보다 정치의 으뜸과 정도는 없다.

#. 오늘 아침. 서구청 공무원과 카톡을 했다.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구청장님이신데..."라는 말의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그래, 맞다. 어쩌겠나. 표심이 그래 말해주었는데. 뭐, 의식 운운할 거 없다. 정치는 국민 의식과는 좀 달리 굴러가는 경향이 짙다. 27일자 중앙일보 1면 톱 제목이 '정당정치, 굴욕의 날'이다. 보수신문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정말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 66년 헌정사에 똥칠한 날이다. 누굴 탓하랴. 모두가 내 탓이고, 네 탓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