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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박근혜 바람, 대구 서구엔 안 분다

#. 나는 대구 서구청 출입기자였다. 오늘 10.26 보궐선거날을 맞아 서구청장 당선을 감히(!) 점쳐본다. 이미 내 답은 제목에 나와 있다. 


#. 10.26 보선을 이야기하기 앞서 돌연 사표를 던진 서중현 전 서구청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서중현 전 청장을 여느 기자보다 유심히 관찰했다고 자신한다. 유심하게 관찰할 필요성이 출입기자인 나에겐 마땅히 있었지만, 그의 성품이 나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분, 재미있는 분이다. 웬만해선 자기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다. 상대로 하여금 은근히 오기를 발동케 한다. 내가 그의 깊은 생각을 듣기까지는 근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 그는 파란색(한나라당) 일색의 대구에서 무소속 깃대를 꽂고 서구청에 입성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7전8기가 아니라, 9전10기로 통한다. 집념의 사내다. 서구 바닥만 20년을 훑고 다녔다. 믿으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란 경구를 믿었던 걸까. 집념의 사내, 그는 교사 출신이다. 파릇파릇한 서른초반, 그는 돌연 사표를 낸다. 교장에게 한 사표의 변은 이랬다. "저 국회의원할랍니다." 그리고 그는 정치판에 뛰들었다. 시의원을 거쳐 구청장이 됐다.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의 꿈은 국회의원이다. 사실, 그의 사퇴는 예견된 것이었다. 새로울 것도 없다.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 25일 강성호 대구 서구청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대구에 내려온 박근혜 전 대표.<사진=조선일보>

#. 그러니까 이번 10.26 보선에 뛰어든 두 후보, 강성호 한나라당 후보와 신점식 친박연대 후보 역시 서 청장의 사퇴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다만 서 청장에게 변수가 생겼다. 금품수수 의혹 등 각종 비리 혐의가 검찰의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검찰은 없는 죄도 덧씌워 사정의 칼날을 들이밀 수 있는 곳이다. 김형렬 전 대구 수성구청장의 경우가 무시무시한 검찰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검찰과 정치권의 덫에 걸렸다면 서 청장의 꿈은 물건너 갈지도 모른다. 현재로선 그 꿈은 요원해 보인다. 국가관이 투철해 큰 정치에 어울리겠다고 판단한 나로선 안타까운 마음이다. 


#. 25일 박근혜 전 대표가 대구를 방문했다. 강성호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것이다. 대구는 한나라당 텃밭인데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지원까지. 게임은 끝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 속단 마시라. 옛날 얘기다. 유독 서구 구민은 다른 구민이 볼 때 요상한 지역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물며 외부의 시선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 서중현 청장이 무소속으로 보궐로 한 번, 본 지방선거에서 또 한 번 당선되면서 서구의 판세는 '한나라=당선'이란 공식이 시원하게 깨졌다. 

#. 서구는 대구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박근혜가 대구 서구를 위해 해 준 것이 없다. 오래된 집앞 보도블럭을 교체해 주고, 매일 아침 손붙잡아 주러 오는 서중현이 서구 구민에게는 최고인 것이다. 서구 구민은 그것을 표심으로 증명해 보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그러니까 서중현에게 재선의 영광을 안긴 그 선거에서 강성호는 이번처럼 한나라당 후보였고, 신점식은 부구청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강성호와 공천경쟁에서 밀렸다. 서중현을 무너뜨리려 한나라당 지도부가 총동원돼 강성호에 힘을 실었지만, 서중현에게는 역부족이었다. 

#. 당시 나는 서중현(사진)의 아주 가벼운 승리를 점쳤고, 선거 결과는 그렇게 나타났다. 서중현은 국회의원도 가능하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구에서 자기처럼 민심을 잘 아우른 이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치, 그건 어쩌면 굉장히 웃긴 거다. 서중현식 선거운동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두꺼비 같은 두 눈을 껌뻑껌뻑 대면서 노인정 어른들 앞에 꿇어앉아 손을 감싸쥐고선, "어무이" 하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식이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우리 중혀이(중현이) 왜 우노." 한다. 동정의 정치, 감성의 정치에 서중현은 능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하루도 안 빠지고 그걸 20년동안 해온 것이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걸 '서중현의 입신위해서'라고 깡총하게 단정하고 비꼬는 이들이 내 눈에는 참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 그 앞에 '게으른' 강성호는 백패할 게 뻔하다. 그 앞에 반기를 들고 나온 신점식 역시 백패할 게 뻔하다. 하지만 이번 판은 서중현이 없다. 강성호와 신점식의 게임으로 좁혀졌다. 강성호는 한나라당 후보란 전통적인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다. 신점식은 친박연대란 한물간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다. 강성호를 지원하러 온 박근혜의 구호는 그래서 코미디 같다. "親朴말고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 주세요!(조선일보 제목)" 신점식은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를 포기했다. 어차피 강성호에게 갈 것이 뻔하다는 걸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박을 선택했다. 옳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친박은 대구 서구에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아무 연고도 없는 홍사덕 의원(대구 서구)이 친박연대로 대구 서구에 무혈입성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후보 둘을 다 만나 봤다. 강성호(사진 왼쪽)는 지난 지방선거 때 우리집까지 찾아와 보이차를 마시고 갔다. 신점식(사진 오른쪽)은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심사 과정의 불편부당에 분노하며 출마를 포기하고, 절치부심했다.(신점식도 내 보이차를 즐겨 마셨다.) 그때 수성구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둘의 캐릭터는 매우 다르다. 강성호는 사람이 얕다. 저 필요할 땐 반드시 만나야 하지만, 저가 필요가 없으면 만나지 않는다. 그의 그런 성품 혹은 잘못된 습관은 선거 때만 반짝 분주하게 움직이고, 평소에 뭐하는지 모르게 조용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나는 보고 있다. 신점식은 부구청장을 지냈지만, 공직자라기보다 풍류를 아는 예술인에 가깝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서브쓰리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마라토너고, 그림도 수준급이고, 색소폰도 곧잘 분다. 육사출신인 그는 강직과 정직을 명예로 생각한다. 군인정신이 너무 투철한 나머지 외곬로 비치는 단점이 있다.

#. 둘 중 서구청장이 되어야 할 사람은 단연 신점식이다. 신점식은 서구를 사랑한다. 아니, 그가 어느 구의 후보이던 그는 그 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성품이 그러하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 옷을 입고도 지난 선거에서 떨어진 강성호는 괜히 떨어진 게 아니다. 이미 세상은 바뀌었고, 공무원들도 강성호를 알로 보고 있다. 지역 언론도 이미 신점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때 신점식 후보 캠프의 한 멤버가 할복자살로 박근혜 지원유세를 막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통에 경력이 동원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세는 신점식이다.

#. 대선과 구청장 선거는 별개다. 박근혜와 강성호는 별개다. 이 사실은 서중현과 강성호의 대결에서처럼 신점식과 강성호의 대결에서도 증명될 것이다. 대구에 박근혜의 박풍(朴風)은 없다. 놀라울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신점식의 바람도 없다. 고요히 물흐르듯 그렇게 신점식은 서구청에 입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