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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덕치와 행실

@심지훈 20150227 대구 남구


#덕치와 행실
<택리지> '사민총론'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극치에 이르면 모든 백성이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며 밭을 갈면서 즐겁게 살아가는데, 어찌 계급과 명예의 차별이 생길 수 있겠는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덕치(德治)를 이야기한 것이겠다.

하나 나는 이 덕치를 좀 달리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나라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 범례를 만들어놓고 회자되게 했을까 라고 말이다.

'사민총론'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성인의 법을 어찌 사대부들만 실천할 수 있겠는가. 농, 공, 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민의 행실을 이야기한 것이겠다.

나는 우리나라 고위 관료가 막말을 하는 것과 고위 관료가 막대한 돈을 비정상적으로 챙기는 것에 대해 그다지 분노하는 쪽에 있는 국민이 아니다.

나는 또한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화가 나는 쪽도 아니다.

대통령의 덕치와 국민의 행실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다.

대통령의 덕치와 국민의 행실 중 하늘의 뜻에 더 가까운 것이 국민의 행실이라고 보는 쪽은, 그래서 대통령이 국민의 행실에 따라 맞추어야 한다고 보는 쪽은, 미안한 얘기지만 좀 모자란 부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이 바로 서면 위정자들이 국민을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관료들이 바로 서야 국민이 바로 선다는 생각은, 그 생각이야말로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대통령이나 국가 관료나 할 것이지, 국민이 강요하거나 생각할 바는 아닌 것이다.

21세기는 윗물과 아랫물이 따로 없는 세상이다. 그냥 주어진 위치에서 제 행실을 똑바로 하는 게 그중 중요한 세상이다.

헌데 동서는 모르겠고, 고금을 막론하고는 국민의 행실을 똑바로 할 수 있는 조건은 매한가지인 듯싶다.

'사민총론'은 이렇게 적고 있다.

"사농공상을 막론하고 사대부의 행실을 한결같이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예를 갖추어야 하고, 예는 부유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다."

예.는. 부.유.하.지. 않.으.면. 갖.출.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연일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건 전적으로 국민이 부유하다고 느끼지 못해서라고 볼 순 없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는 봐도 무방하겠다.

'예도 부유해야 갖출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이 전제를 뛰어넘지 못할 게 뻔하므로, 대한민국은 그 어떤 대통령이 들어선다 해도 점입가경의 역사적 장면 횟수는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그게 우리 삶의 일부이자, 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삶, 별 것 없다. 차라리 우리의 엉망진창인 현실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편이 사회 소란과 소요를 진정시키는 첩경일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만'하는 국민들이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좀은 궁금하다.
/2016.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