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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공연 리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그 약속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절망적이고도 슬픈 이야기다. 하나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6일 개봉했다. 그런데 정면 응시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대전에는 이 영화를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정부대전청사 앞 영화관에서만 상영한다. 그것도 작은 관 두 곳에서다.


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대부분의 멀티플렉스는 상영 자체를 않는 걸까. <또 하나의 약속>은 '불편한 진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자 세계적 기업의 반인류적 행태가 씨줄이라면, 그것과 사투를 벌이는 피해자들이 날줄이다. 영화 흥행요소인 선과 악의 대립구도도 들어 있다. 그런데도 상영관은 눈 씻고 찾아 봐야 할 정도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를 상대로 세계 최초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사실(fact)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 주인공과 영화 성격을 두고선 해석이 분분하다. 불가피한 현실이다. 제작사는 특정 기업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가족애를 다룬 영화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멀티플렉스의 상영관 수 배당은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영화관들이 최대 광고주 '삼성'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에(사실은 자신들의 피해를 우려해) 가급적 침묵한 결과라는 거다. 이 이면에는 영화관은 정의와 선의보다 철저한 경제논리로 돌아간다는 함의가 읽힌다.


양자의 입장은 하나의 일치점으로 모아지지 않는다. 제작사는 이 영화가 황상기씨(故 황유미씨 부친)의 이야기라고 한다. 2005년 삼성전자 입사 2년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난 고(故) 황유미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멀티플렉스의 상영관 수는 제작사의 이런 입장에 대해 '글쎄...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런 사정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 영화의 엔딩 자막은 그걸 말해 주고 있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의 '진짜 주인공들'이 스크린 위에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솟구쳐 오른다. 이 영화는 크라우드펀딩(일명 '티끌 모아 태산'식 창작모금.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행위)과 개인투자금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제작비를 이렇게 마련한 건 우리 영화사에서 최초다. 게다가 박철민, 김규리, 이경영, 윤유선, 박희정, 유세형, 김영재, 정영기 등이 노개런티로 열연했다. 박철민(황상기씨 분)은 '억울하고 허망하게 죽어간 딸'에게 약속한다. "네 목숨값 받드시 돌려받겠다"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1심에서 승리(?)한다. 하나 피고측이 항소한다. 이때 원고는 산업재해관리공단이 아니다. '거대 공룡' 삼성이다. 산재소송에서 이해관계 기업이 스폰서 변론을 맡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 법은 그게 정당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이 소송의 2심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여자친구는 내내 눈물범벅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도 '진짜 주인공들' 사이에 끼어 날아올랐다면 부끄러움의 무게를 좀 줄였을까. 나는 '또하나의가족제작위원회'를 검색한다. 내가 보탤 수 있는 힘은 아직은 대중을 휘감지 못하는 나약한 글과 큰 보탬은 되지 못할 몇 푼이 고작이다. 그게 조금은 슬픈 아침이다. 하나 '또 하나의 가족' 틈에 나도 어울릴 수 있음은 작은 위안이다. 


꽃다운 나이에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고(故) 황유미씨의 명복을 빈다. 
그의 아비, 황상기씨와 어미 그리고 동생에게 끝까지 건승을 빈다.
우리 사회 진짜 주인공들에게 진심으로 박수 보낸다.
그리고 용기 있는 고발자, 당신에게도... 
/심보통 201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