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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일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일을 도모하는 자세

고등학교 때 배우는 고사성어 중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게 있다. 이 성어에는 비극적인 스토리가 함의돼 있다. 
뜻풀이를 하면,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①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亡)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고사는 무릇 유래가 있는 법인데, 이 고사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소개돼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에 A라는 나라가 C라는 나라를 치려한다. 그런데 A국이 C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B국을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 A국의 왕은 B국 왕에게 협조를 구한다. 
이때 B국의 책사가 간언하기를 C국과 B국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여서 C국이 무너지면 B국도 성치 못할 것이라고 아뢰었다.
여기서 A국은 진(秦)나라이고 B는 우나라고, C는 괵나라이다.
순망치한은 여기서 유래된 고사이다.
이 고사가 비극인 것은 재물에 눈이 멀었던 B국의 왕은 책사의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C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A국은 C국을 물리친 뒤, 돌아오는 길에 B국도 단숨에 잡아먹었다. 
이 고사는 연합과 협동의 묘를 잘 알려주고 있다.

반면 우리 속담에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齒亡脣亦支.치망순역지)'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삶의 도전기를 암시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무슨 일이든 도모하고 기필코 해낸다는 함의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순망치한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더 잘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양극단의 옛말을 인용하면서 주절대는 이유는 고향에 돌아와 일을 도모하려고 하니, 우리 마을 평균 나이가 70이다. 그렇다고 쓰러져가는 마을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지난주말에는 아랫마을에 사시는 장년층과 그 아들을 함께 만났다.

오늘은 재기 넘치는 고교생 셋을 불러다 놓고 하루종일 '도모할 일'을 설명하고, 과제를 내주었다. 

오후 늦게 김천시청 부근에서 점심을 사주고 올라오는데 진이 다 빠져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왕 내 고향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순망치한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묘를 잘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굳건해졌다.

통통 튀는 고교생들의 감성 포인트는 역시 서른 중반의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나의 감성보다 나보다 젊은 청춘의 감성이 더 잘 부합되어야 고향마을이 또 한 번 흥에 겨울 수 있으리라.

2차 미팅은 다가오는 일요일이다.
김천시장 님 만나러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