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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희망칼럼10]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1.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현대사 정통을 관통해온 그에게. 

"어르신, 정치란 무엇입니까?"

그는 오른쪽 손을 꿈뜨게 든 뒤, 엄지를 쭉 펴 허공에 글자를 새기며 말했다.

"이거야, 이거야."

그게 무엇입니까?

"빌 공(空). 허무. 공허. 아무 것도 없는 것!"

의외의 답변에 그는 흠칫했다.

위는 정치 9단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빌 공"이라고 답하더라는, 어느 정치평론가의 인용을 풀어쓴 것이다.


#2.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자면, 화면 아래 흐르는 많아야 16자짜리 단신 뉴스가 개울물 흐르듯 졸졸 흘러간다. 그런데 내용은 구정물이다. 온통 검정튀튀한 뉴스 자막만 곰방 흘러간다. '업무과다 호소한 사회복지사 자살' '태안군 교감 10일째 실종...경찰 수색' '알선수재 혐의 고대 함성득 교수 영장 청구' 등등.


두 이야기는 숱한 청춘들에게는 해당사항 무無인 이야기다. 하지만 머지않아 해당사항이 있을 법한 일이기에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유비무환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 이 경우는 반면교사라 해야 옳겠다. 


오늘의 타킷은 대학생, 취업준비생이다. 이 글은 그들을 위한 글이다. 


우리는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한다. 세간 풍속은 능동적인 잘 살기보다 '잘 살 것'을 강요하는 힘이 더 센 것 같기도 하다. 속되게 말해 쥐나 개나 예비공무원이고, 예비선생이다. 또 공사준비생이고, 대기업준비생이다. 그게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정답인 양 고개를 박고 '잘 살기'의 초석 마련에 박차를 가한다. 


어느 때부터 온오프를 막론하고 토크강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물만난 듯 다재다능한 재주꾼들이 강단에, 연단에 올라 속사포처럼 쏘아제낀다.


"저는 노력하니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용기를 갖고 꿈에 도전해 보세요.(나는 노력해서 성공했는데, 너희는 노력도 안 해 보고 안 된는다는 투로.)"


나는 그렇게 당돌한 말을 뱉는 그들을 보면 밥맛부터 떨어진다. 대중을 강의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꿈과 용기를 얻어러 온 대중의 가슴가슴마다 뾰족한 화살을 꽂고 사라지는 강사에게 어떻게 넉넉한 박수를 보내 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만나는 숱한 대중적 강의는 대부분 우스개가 반 시간 이상을 채운다. 웃겨야 훌륭한 강사고, 심각한 얘기만 늘어놓고 가면 훌륭하지 못한 강사가 된다. 훌륭하지 못한 강사는 그 바닥에서 아웃이 된다. 웃고 놀자고 기획한 강의는 아닐 것인데... 강의를 기획한 사람이나, 강사나, 강의를 듣는 자나 모두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김미경이란 여자 강사가 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최근에 추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미경의 화법은 뭐랄까, 대단히 그리고 확실히 '아줌마'스럽다.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하고 막 던진다. 그런데 대한민국 아줌마 화법이란 게 상대를 들었다 놨다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그의 이야기에는 알맹이가 없다. 그저 대중이 웃고 넘길 이야기만 썰로 풀다 끝낸다. 웃음코드는 '대중 비하'다. 특정 개인을 비꼴 땐 자기와 자기 엄마를 끌어다 쓴다. 하지만 그 비꼼의 대상은 결국 '강의를 듣는 당신'이다. 결국 '너 들으라고 하는 얘기'다. 그렇게 낄낄댈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그의 얘기는 대단히 오만불손한 것이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오만할 수가 있을까 싶다.


오만한 자에게는 철퇴가 가해지기 마련이다. 김미경은 최근 석사학위 등 논문 4편의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그 불길한 징조로 '인문학 비하'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누구든 남의 인생을 단죄할 수 없다. 지금 당신의 현재 삶은 잘 사는 게  아닐 수 있다. 잘 사는 게 아니라면 최선의 삶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 삶의 연못에 타인이 돈을 던져 질책하게 놔 두어선 안 된다. 왜 당신의 삶을 부모형제도 아닌 애꿎은 타인에게 간섭받으려 하는가.


잘 산다는 것은 먼훗날 공허하게 죽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제 삶의 틀 속에서 좌절하고 성취하고 성공이란 단어를 써 가게 되어 있다.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미국의 국민 만화가 빌 킬은 이렇게나 멋진 말을 남기고 갔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지, 오늘은 신의 선물. 우리가 오늘을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지.(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of God. Which is why we call it the present.)"


실로 멋진 말이다. 하나 선물 같은 '오늘 하루'를 365일간 참 알차고, 보람되게 사는 인간은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 일상에서 좌절하고, 성취감을 얻고,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 보고 나에게 묻는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남들 다가는 공무원의 길, 대기업 사원의 길, 선생의 길에서 벗어나 실로 잘 사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물어보고 따져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시인 함민복은 <비정한 길>이란 시에서 '길은 유서, 몸은 붓'이라고 우리 삶의 본질을 찍어내 각인해 놓았다. 


시중에는 청춘은 아파야 한다는 책도 있고, 청춘은 미쳐야 한다는 책도 있다. 그런데 살아보면 청춘만 아픈 게 아니고, 청춘만 미쳐야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저마다 그때 그때 아파하고, 미쳐 지낸다. 그게 우리 인간의 삶인 고로 그러하다. 하나 아프기만 하고, 미쳐 지내기만 한다면 그건 옳은 삶이 아니다. 아픈 속에서도 기쁜 일이 생기고, 미쳐 사는 동안에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그래서 삶은 살아볼 만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방치해 두면 안 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 볼 일이다. 그전에 나에 대해 숙고해 볼 일이다. 그런 뒤 아파하고, 미쳐 볼 일이다. 그러면 그 속에서 희노애락이 춤을 추리라. 그걸 즐길 줄 알아야 먼훗날 누구처럼 빌 공 자를 허공에 새기지 않게 될 것이다. 


작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이렇게 썼다.


"천국은 그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수록 그것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 막히는 지옥이 되어버릴 수 있도 있습니다."


작가 박완서는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에 대해 남긴 작품평에서 "존재가 사라진 후 다른 존재에 남긴 공동空洞의 크기가 살다 갔다는 존재 증명의 전부가 아닐까"라고 했다. 


한 생을 살아냈다는 것, 그것은 그 누구의 삶이 건 간에 대단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평생을 인간 사는 이야기를 남기고 간 두 작가의 말을 청춘에게 고하는 말로 이어 붙이면 실로 눈물겨운 명언이 된다.


'내가 천국이라 생각하는 삶이 타인이 볼 때는 지옥일 수도 있음을, 내가 잘 살았다 못 살았다는 나 죽은 뒤에 남은 자들이 평가해 줄 것임을, 그대 청춘은 알지어다.'


이것이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들이 남기고 간 교훈이렷다. 

/2013.3.20


[스페셜 애드]


# 노루귀

우리집

봄 전령사

언제쯤 당도할까


볕 좋은 날 

마중 간지 사흘째

밤새 찾아 왔을까


진보랏빛 노루귀

고개를 내밀었네


반갑다, 반가워

고맙다, 고마워


우리집 

봄 전령사

노루귀

/2013년 3월 9일 집 앞뜰에서 


스토리텔링Pro.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