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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동갑내기 시인의 죽음 가을비 내리고 기온이 떨어지면 이따금 나는 한 시인을 떠올린다. 샛노란 단풍과 울긋불긋 낙엽이 을씨년스레 길바닥서 이리저리 나뒹구는, 6년전 그런 날 나는 붉은색 표지의 시집을 품에 안고 신문사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은사께 졸라 대구 교보에서 선물(?)받았다. '분홍색 흐느낌.' 시집 제목이다. 저자는 신기섭. 1979년생. 경북 문경서 태어났다. 2002년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2005년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스물 여섯의 나이다. 기특하다. 그런데 이 사람 하늘나라에 있다. 2005년 12월 4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다. 시인은 죽음을 예감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더보기
[심지훈 문화칼럼] 전봇대의 진짜, 돼지감자의 가짜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1970년대 미모의 통기타 가수 이연실이 부른 '목로주점' 후렴구입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때문인지, 79년생인 내가 들어도 참 좋은 곡이란 생각이 듭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때 그 시절, 목로(木壚)를 깐 주점이 눈에 선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흙바람 부는 벽 한켠서 그네 타는 삼십촉 백열등을 떠올리노라면, 샛노란 단풍과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인 가을이 연상됩니다. 꼭 요즘같죠. 하나 목로주점엔 슬픈 시대상이 구구절절 흐릅니다. 그래서 애달프고, 애처로운 마음이 듭니다. 70년대, 너나가 참 못 살았죠. 못 살았으니 잘 못 먹었죠. 시골 사정은 더 열악했습니다. 삼십촉 백열등, 언감생심이었죠. 호롱불도 밝히기 힘든 집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새마.. 더보기
[시집] 고은은 운동선수가 아니다! 시집 「허공」. 시인 고은이 ‘이루었다’. 등단 50돌을 기념해서다. 모두 107편이 수록됐다. 행간에 오롯이 연륜이 읽힌다. 삶의 애환이 배어있다. 인류에 대한 애환이다. 한국시 100년 중 반세기를 함께한 그다. 하여 그의 애(哀)와 환(歡)은 곧 역사다. 그에게 ‘허공’은 맘껏 절규할 공간이요, 외침의 공간이다. 이내 평정을 되찾는 공간이다. 어떤 곳보다 평화로운 공간이다. 보게/어느날 죽은 아이로 호젓하거든/또 어느날/남의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괜히 서럽거든/보게/뒤란에 가 소리 죽여 울던 어린시절의 누나/내내 그립거든/보게/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보게/찬물 한모금 마시고 나서/보게/그대 오늘 막장떨이 장사 엔간히 손해보았거든/보게/백년 미만 도(道)따위 통하지 말고/그냥 바라보게/.. 더보기